본문 바로가기

글/카게프로

[하루신] 마지막 부탁












[BGM] I Wouldn't Mind - He is We 









  신타로, 부탁이 있어.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풀거리는 커튼의 너머가 뿌옜다. 눈물 때문인지, 워낙 독특한 커튼의 재질 때문인지는 알 턱이 없었으나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둘 사이에서는 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노란빛을 띠고 있는 맑은 햇빛은 정말로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둘 중 누구도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신타로는 축축해진 손등을 반대쪽 손바닥으로 대충 닦아낸 후 그것을 져지 끝자락에 닦아내고 코를 훌쩍거렸다. 느긋이 고개를 들고 애써 씩 웃어 보이니 하루카 또한 굳어있던 얼굴의 근육을 풀고 빙그레 웃어 보인다. 혀뿌리까지 차오른 숨과 여러 감정을 대충 삼켜내며 가슴을 쓸어내린 소년은 고개를 벌게진 눈으로 고개를 살살 끄덕거렸다. 

 "무슨 부탁인데요?" 

  그렇게 내뱉은 말에는 울음이 가득했다. 땀에 절어 뭉친 머리털을 중간에 둔 채 거리를 두고 각기 떨어져 있던 눈 안에서 우두커니 신타로를 바라보고 있던 검은자위가 소리 없이 굴러가며 신타로에게서 점차 멀어져 갔다. 동시에 반들거리는 눈동자 안으로 비추어지던 신타로의 형상은 사라지고 대신 침대 옆 테이블에 놓여있던 붉은 물컵이 들어섰다. 신타로는 침을 삼킨다. 사실 이대로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서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먹던 바움쿠엔이나 마저 먹으며 어제는 학교가 어땠고, 어제는 날씨가 어땠고, 달갑지는 않지만 에노모토가 어땠니 하는 이야기들을 대충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리하고 싶으면 그리하면 될 것을 꽤, 아니. 솔직히 비정상적일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지마는 신타로는 그럴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었으나. 제 앞에서 차마 저를 바라보지 못하고 연신 눈을 굴려대며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이 사람 앞이라면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죽어간다. 하루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는 조용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만, 곧 괜찮아질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렇게 행동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신타로는 끔찍하게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확실했다. 식판 가득 쌓아놓던 새하얀 쌀밥도, 흘러넘칠 것처럼 잔뜩 담아두었던 구수한 냄새의 된장국도, 새큼새큼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던 오이 무침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그 모든 것들은 사실 고약한 냄새를 내며 저기 침대 위에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선배와 함께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릎 위에 올려진 것으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달콤한 빵 냄새 사이에 시체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끌어안고 보드라운 살갗에 코를 박은 채 킁킁대면 코끝에 맴돌기 시작하는 냄새처럼. 물론 둘 사이에는 다른 게 있다. 아기 냄새와 달리 이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 인간의 몸에서 나기 시작하는 냄새는 신타로에게 따뜻함과 포근함이 아닌 역겨움을 선사했다.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코코노세 하루카는 죽어가고 있었다. 

  

  

  하루카는 옆에 놓인 물잔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가 슬슬 고개를 저어대며 머릿속을 환기시킨다. 예컨대, 죽음을 향한 자신의 두려움 같은 것. 끝없는 어둠으로, 아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야말로 무의 공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자신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들.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것들 말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본능에 충실하며 몸이 내리는 명령, 그러니까 뒤에 놓인 푹신한 베개 위로 머리를 뉘이고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 컸다. 허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 눈을 감고 방 안 모든 빛을 차단하는 순간 그것으로 모두 끝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뚜벅뚜벅, 찬찬히 저도 모르게 제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세상으로 걸어 들어갈 것만 같아서. 너무나도 두려워서, 하루카는 슥슥 소매로 눈을 닦아내고 물컵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신타로를 향해서 다시 한 번 웃어 보였다. 

 "이건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곧바로 시선을 내리깐 채로 눈앞에 아른거리는 붉은색 져지 끝만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손을 뻗어 신타로의 젖은 손등 위를 가볍게 감싼다.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눈동자 위로 두려움과 죄책감과 그리고 끝없는 슬픔이 질척하게 섞여 본래의 빛갈을 잃어버리고 더럽혀진 검은 파도가 일렁거린다. 달싹대는 붉은 입술처럼 벌겋게 물이 든 눈을 깜빡거리던 하루카는 신타로의 무릎 위에 놓인 바움쿠엔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저 그의 상체만을 팔로 살짝 끌어안았다. 내 죽음을, 평생 잊지 말아줘. 언제나 슬퍼해 줘. 내가 그 안에 있을 수 있도록. 

  그렇게라도 어딘가에 자리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당신이 알까. 또르르 뺨을 타고 굴러떨어진 눈물이 바움쿠엔과 맞닿음과 동시에 땅에 처박힌 유리잔처럼 무수히 많은 조각을 만들어 내고 천천히 그 속에 스며드는 것만 같다. 목덜미를 타고 귀에 스며드는 목소리에 이번에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신타로는 여전히 흔들리는 뿌연 커튼의 끝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