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프로 (76) 썸네일형 리스트형 여유를 가지고 걷는 사람 키사라기 모모는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현관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팬이 준 선물이라고 했던가. 검은색 리본이 달린 하얀색 플랫슈즈를 고이 숨겨놓았던 하늘색 박스 안에서 꺼내어 내려놓고 그 안에 들어있던 꾸깃꾸깃 뭉쳐져 있는 종이를 빼내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하얀색 자켓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하늘색 이어폰을 꺼내어 제 귀에 꽂아 넣고 줄 중간에서 달랑달랑 춤을 추며 달려있는 것을 엄지로 꾹 누른다. 달칵달칵,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동에 괜스레 기분이 흔들흔들, 잔 안에서 춤을 추는 음료수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신 안으로 그 작은 발을 쏘옥 집어넣고 두어 번 짤막하게 발을 굴렀다. 신발 안에 꼭 제 발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한껏 들뜬 목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열린.. [하루신] 아주 해로운 일 아, 저 사실 지금 엄청 졸리거든요. 신타로는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쳐들기를 반복하며 중얼거린다. 도대체 어젯밤에는 뭘 했어? 하루카의 물음에 그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빼어내 휘휘 저어 손사래를 쳤다. 선배가 알면 안 되는 짓을 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신타로. 모르는 게 좋아요. 정신건강에 아주 해로운 일을 했거든요.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하루카는 웃는다. 아주 작게, 큰 손으로 작은 주먹을 쥐어 그 측면으로 지그시 입술을 누르며 웃음소리가 교실 안을 맴돌 정도의 크기가 될 수 없도록. 그런 하루카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서, 신타로는 연신 흔들어대던 손을 거두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채 고개를 까딱거리며 샐쭉댄다. 모른다면서 웃는 건 좀 수상한데. 치켜세워.. [하루신세토] 평생 모를 거예요. 내 마음. [BGM] 블락비 - Toy 컵에 물을 쏟아 붓듯 신타로는 세토의 품속으로 제 몸을 욱여넣은 채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손으로 문질러 닦아 낸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얇은 머리카락에서는 간지러운 꽃냄새가 마구 풍겼고, 약간의 물기가 남아있는 듯 했다. 소년은 손을 들어 청년의 둥글게 휜 등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아지트 내에 남은 저와 그, 단 둘. 신타로는 몇 가지 조건이 성립되는 상황이 오면 세토의 품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마치 한 마리의 동물처럼 새근새근 숨을 내뱉으며 잠을 청하고는 했다. 첫째, 그의 애인인 하루카가 자리에 없을 것. 둘째, 세토와 신타로 단 둘일 것. 이것도 일종의 분리불안장애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인터넷에 올렸던 지식포털사이트에 달린 답변 중 딱 한 번 이해할 수 있었던 .. [세토신] 박아넣다. [BGM] 아라키 - ECHO "제 추리는 틀리지 않았어요." 발끝부터 서서히 몰려드는 싸늘함이 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있다는 듯이 번뜩이는 호박색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자신을 향해 있었다. 좋게 말하면 희열, 나쁘게 말하면 불안함. 머리 위로 눌어붙은 감정들은 길게 늘어져 연장선을 그리며 자신의 정수리부터 천천히 적셔가고 있었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몸을 떨었다, 제 앞에 있는 이가 눈치 챌 수 없도록 아주 미미하게 몸을 떨어대며 입술을 짓씹었다.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연이어 몰아치는 질문은 별안간 그의 머릿속에서 태풍따위를 연상케 했다.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감정이라는 것에서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던 신타로로서는 속을 휘젓는 이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의심을 받고 있다, 그.. [하루신] 감기 조심합시다 죽겠어요 “완전히 골골대고 있잖아요.” 이마 위로 내려앉은 손이 한겨울 눈송이처럼 차디찼다. 제가 꾸준히 내뱉고 있는 숨은 뜨겁고, 온몸에서는 뭉게뭉게 열이 올랐다. 툭 튀어나온 감이 있는 말에는 다듬어지지 못한 염려가 묻어있었다. 하루카는 덮고 있던 이불을 꼭 잡은 채 가슴 위로 끌어당긴다. 아하하, 완전히 맛이 간 목에서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군데군데 갈라지고 찢어진 것을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저 웃어 보인 하루카는 천천히 눈을 끔뻑거리며 이마로부터 거둬지는 손의 밑바닥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학교 안 나왔다는 이야기에 엄청 놀랐다고요. 알고는 있어요?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은 기분. 단지 기분 탓이겠지마는, 새빨간 입술을 앙 다문 채, 평소보다 빛이 덜한 둥그런 .. [쿠로신] 딜. 어쩌면 너도 나도, 다른 녀석들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침대 위에 엎어져 있던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꽤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쿠로하는 막 걸친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고개를 돌려 신타로를 바라보았다. 이불로 둘둘 몸을 말고서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로 살짝 붙잡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모습이 어째서인가, 눈에 강하게 박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물을 가치도 없었다. 몸을 섞는 행위에 연장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걸로 안심따위는 할 수 없다. 그래, 저 녀석에게는 아직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남아있는 셈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묻는 쿠로하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관심 없다는 느낌. 울컥하고 차오르는 것이 있을만.. [하루타카] 넌 집에 안 가고 싶어? 날이 참 맑았다. 점심을 먹은 후라 그런가, 잠은 점점 오기 시작하고. 아니. 사실 점점 오기 시작했다는 말보다 반쯤 잠에 절어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리라. 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헤드폰에서는 여전히 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쿵짝쿵짝, 이런 정신 사나운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도 잠에 반쯤 절어있을 수 있다는 건 썩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까? 어디 잠을 가장 잘 잘 수 있는 사람에게 상 주는 대회 같은 게 있다면, 그런 직업이 있다면 평생 놀고 먹으며 돈까지 벌 수 있지 않을까 쓸데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그런 생각이 머리를 한 번 휘젓고 바람에 실려 창 밖으로 사라져간다. 그런 자신과는 다르게 또 다른 소년, 코코노세 하루카는 제 옆에 있는 책상에 앉아 끊임없는 창작을 통해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 카게 전력 60분 [신아야] 어느 휴일 창문을 통해 저를 비추는 햇빛이 꼴에 봄이라고 반짝반짝 법석을 떨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귀찮다고 해야 할까, 싫다고 해야 할까,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신타로는 제 옆에 쭈그려 앉아 책상에 손을 얹고 반쯤 목도리로 얼굴을 가려놓은 채 둥그런 갈색 눈망울을 보기 좋게 치켜뜬 소녀의 얼굴을 도르륵 눈동자를 굴려 한 번 바라본 뒤 작게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이 녀석은 뭐가 좋아서 이렇게까지 옆에 붙어있는 거람. 친하게 지내준다는데 무어가 그리 불만인지, 좋아라, 팔을 벌려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지는 못할망정 손을 휘적거리며 약한 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으로 아야노를 밀어내는 저의 꼬락서니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거나, 주관적으로 보거나 일단 추했다...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