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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신쿠로신] 바람 났습니다.



















"헤어져."

"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쿠로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타로를 바라보았다. 신타로는 멍한 눈으로 머그잔을 바라보고 있다가, 저와 눈을 맞추길 원하는 쿠로하의 바람은 무시해버린 채, 그와 눈을 마주하지 않고 머그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너, 미쳤냐? 평소 같았으면 저의 눈빛에 마시던 것도 토해내며 한심하게 굴었을 터인데. 무언가 이상하다.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시는 청년을 바라보던 쿠로하는 곧 주먹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이쪽 봐. 새끼야. 약 처먹었냐? 커진 목소리와 굉음이 은은하게 온기가 돌던 카페 안을 울렸다. 동시에 싸하게 얼어붙은 냉기가 그들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에 반응한 카페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들에게로 꽂혔지만, 당사자들은 그것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진정하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거리던 쿠로하가 물었다. 계집 생겼냐? 쿠로하의 말에 신타로는 커피의 컵을 기울이던 것을 멈춘 채 쿠로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마치 한 방 맞았다는 듯, 그런 표정을 짓는다. 빙고. 딩동댕, 쿠로하의 머릿속에서 정답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 씨발새끼. 차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채, 빠르게 손을 뻗은 그는 곧장 앞에 있던 신타로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신타로의 몸이 올라가면서 그가 들고 있던 컵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아, 이걸 어쩌나. 신타로는 눈을 내리깔고 산산조각이 난 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저 저희를 바라보기만 하던 시선들이 신고해야 하는 것 아냐? 말려야 하는 것 아냐? 수군수군 떠들기 시작하는 것을 들으며 그는 당장이라도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이 새끼는 상황과 장소를 못 가려요. 혀끝으로 맴돌던 말을 꾸욱 삼킨 그는 눈동자를 바로 뜨고 쿠로하를 바라보았다. 

  쿠로하는 이 와중에도 다른 곳에 신경을 쓰며 주위를 힐끔거리는 신타로를 보며 험악한 얼굴을 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평소처럼 한심한 소리를 내거나 발버둥 치지 않는다. 와중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 보이는 소년을 향해 살인충동이 들끓기 시작한다. 쿠로하는 대강 주머니에 있던 만 원짜리 세 장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는 신타로의 멱살을 끌어 잡은 채 질질 그를 끌고 카페의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본 게 맞는지, 아니면 진상손님이 사라진 것에 기뻐하느라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야속하게도 종업원은 참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신타로를 알아채지 못한 채, 쿠로하는 저의 멱살을 더욱 강하게 끌어잡고 길을 걷는다. 몇십 분을 그렇게 걸었을까, 쿠로하의 손이 자신의 멱살을 놓고 떨어져 나간 것은 사람 둘이 나란히 서서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길이 그의 눈 안에 들어왔을 때였다. 쿠로하는 거칠게 손을 털어내듯 신타로의 멱살을 놓고 그를 안으로 밀쳤다. 힘이 얼마나 강한지 신타로는 제대로 서지 못한 채 쿠로하의 힘에 밀려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아, 젠장. 신타로가 작게 욕지거리를 했다. 젠장? 그 작은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저의 말을 되묻듯 따라 하던 쿠로하가 가깝게 다가와 다리를 굽혀 앉았다.

  언제부터냐. 쿠로하의 말에 신타로가 허, 숨을 토해내며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왜, 신경쓰이냐? 자연스러운 신타로의 말에 그는 저와 똑같이 허, 숨을 한 번 토해내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씨이발, 그래, 이렇게 나오시겠다? 입꼬리는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지만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이, 까딱 잘못 건들면 당장 지나가는 사람 아가리라도 털 기세다. 열이 받아도 제대로 받은 모양이지. 신타로는 눈을 치켜뜨고 쿠로하를 바라보다 등 뒤로 닿아있던 담벼락에 고개를 기댔다. 어차피 너 말이야, 나 같은 건 신경 안 쓰잖아. 아니냐? 지금 와서 다른 사람이 생긴다고 한들, 문제없잖아. 그리 씨불이고 씩 웃는 모습이 한 대 줴패고 싶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쿠로하는 가만히 신타로를 바라보다 눈썹을 추켜세우며 다시 한 번 허! 하고 숨을 터뜨렸다. 곧 뺨이라도 한 대 쳐갈길 기세로 그는 주먹을 꽈악 쥐며 부들부들 손을 떨고 있었다. 신타로는 그런 쿠로하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쳐 봐. 차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는 말을 속에서 되뇌며 괜스레 허세를 부린다. 허나 강한 충격이 살갗과 맞닿으며 소량의 피를 쏟아내리라 생각했던 신타로의 예상과는 달리 쿠로하는 몇 초고 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고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하나, 둘, 셋. 숨을 들이마신 신타로는 의아함을 느끼며 눈을 슬며시 뜨고 쿠로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아주 잠시 숨을 들이쉬고 내쉬를 반복하며 호흡하다 곧 저와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구기며 발끝으로 저의 몸을 툭 건드렸다. 그 뒤, 어디 한번 잘해봐라, 개새끼야. 그 한 마디만을 툭 던져놓은 채 몸을 돌려 천천히 골목길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냥 이상한 정도가 아니다. 무슨 일이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가? 

  이미 사라져버린 쿠로하의 꽁무늬를 눈길로 쫓으며 신타로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렇게 끝나면 무언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게 끝났으니 된 거 아니냐라고 물어온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렇지만, 아니. 그렇지만! 인상을 구긴 신타로가 천천히 담벼락을 짚고 몸을 일으키며 혼란스러운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아, 뭐야. 진짜 이대로 끝이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혹시라도 골목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이를 찾으며 신타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골목 밖으로 나왔다. 허나 아주 당연하게도, 쿠로하는 고사하고 그와 닮은 사람의 뒷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신타로는 진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인제 와서?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하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서 끝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의 앞에 있는 여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뇌를 가동해 일전 쿠로하의 행동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쿠로하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 먼저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그럴만한 입장은 못 된다는 것을 그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 젠장.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몇 번이고 똑같은 욕만을 곱씹어대던 신타로는 곧 저의 손 위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깜짝 놀라 저의 앞에 있던 여성을 바라보았다. 신타로, 뭐 생각해? 저를 보며 둥그런 눈을 휘어 웃어 보이는 것이 누가 보아도 사랑하고 싶도록 생긴 여자. 턱을 괸 채 가만히 여성을 바라보던 신타로가 그냥‥‥, 하고 답한 뒤 작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여성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정말로 쉴 새 없이. 물론 그녀가 쉼 없이 떠든다고 해서, 그것을 신타로가 모두 듣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역시나 그는 그녀의 말에 대강 고개를 끄덕거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외모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그 자식과는 대조되는 금색의 머릿결─아마도 자연이 아닌 염색일 것이다.─둥그런 눈에,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의 촉촉한 눈동자, 작고 도톰한 선홍색 입술에, 작은 체구. 어딜 보아도 그 새끼와의 공통점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아, 젠장! 진 기분이다. 완벽하게 진 기분. 당장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꾸욱 삼키며 신타로는 고개를 저었다. 젠장! 그때였을까, 저기, 신타로. 언제 다가온건지, 저의 옆에 앉아있던 여성이 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어온 것은.

"어어?" 

  신타로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가만히 바라보다 눈을 끔뻑거린다. 어디 아파? 곧 손을 뻗어 저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에 그는 몸을 움찔거리며 뒤로 젖혔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저조차도 짐작하지 못한 반응에 그는 미간을 구기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아무래도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괜찮지? 그의 말에 그녀는 에에~ 벌써?'하고 물으며 꽤 아쉬운 표정을 짓곤 천천히 손을 뻗어 저의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는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응? ‥‥이거 완전히. 하아, 한숨을 내쉰 신타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슬슬 여동생 데리러 갈 시간이야. 되도 않는 핑계, 그런 것을 꺼내어 대고는 그는 몸을 일으켰다. 내일 보자. 그리 말하며 신타로는 천천히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곧 문을 열고 바깥에서 부는 찬 바람과 마주하자 어느 곳에 묶여있던 정신이 확 트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홱 고개를 돌려 건물 안을 바라보았다. 망했다. 일순간 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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