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루시아 - 오필리아
신이시여, 이제 그만 악마가 나를 포기하게 하시고.
탕. 머리에 총알을 처박은 소년은 그리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 있었다. 아주 깊은 잠에,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딱딱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처박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쿠로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신타로의 얼굴을 노란색의 눈동자 안으로 주워담았다. 카메라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미친 듯이 찍어대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그는 그렇게 신타로의 얼굴부터, 곳곳에 난 상처까지 사소한 것조차 놓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그의 모습을 완벽하게 머릿속에 새겨넣었을 때, 쿠로하는 천천히 신타로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키를 맞추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주륵 피가 샌다. 그 모습이, 마치 꽃을 흩뿌린 신부와도 같아서, 그는 조심스럽게 신타로의 목덜미에 고개를 대고 눈을 감았다. 그의 온기가 사라져만 간다. 더는 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간다. 증오라고 불리는 역동적인 감정은 저의 머리를 지배하고, 온몸을 식힌다. 뜨겁게 끓어야 할 저의 피는 마치 추운 겨울의 으슥한 호수처럼 차게 식어 굳어만 간다.
이제 슬슬 지겹지 않아? 누구를 향한 물음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신타로의 입술에 저의 입술을 맞댄다. 차가운 냉기가 입술에서부터 흘러들어와 곧장 잠에 들게 만든다. 그는 다시 한 번 만나러 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더욱 깊게 소년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난 네 녀석이 싫어. 그것이 첫 루프.
난 네가 증오스러워. 그것이 두 번째 루프.
제발 사라져. 그것이 세 번째 루프.
‥‥‥‥.
제발, 그만둬.
이제 몇 번일까, 세는 것을 포기한 쿠로하는 그의 마지막 말을 '가장 최근 기억 속에 남아있는 루프'라 이름 붙였다. 수만 번, 수천만 번, 몇 번을 반복했을지 알 수 없다. 이제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저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소년의 눈길을 피하여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것들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더라, 꽤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은데. 허나 더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는 이러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쿠로하의 저 자신을 향한 물음에 그는 대답한다. 아니, 아직 해야 할 이유가 남아있어. 쿠로하는 저 자신의 말에 동의한다. 아직 해야 할 이유가 남아 있었다. 저의 앞에 있는 소년, 비뚤어진 애정이라고 한들 어떠한가. 그는 키사라기 신타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것이 사람의 손길을 타 잘 정리된 실크 소재의 이불처럼 보드라운 방법이든,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아 비참하게 홀로 자라며 원망과 증오를 먹은 고통스럽고 비뚤어진 방법이든. 굳이 저의 애정 방식은 어떠한 쪽인가 묻는다면 쿠로하는 '어중간함'이라고 답했다.
보드랍다고 이야기하기에는 과격했다. 허나 그저 고통스럽고 비뚤어졌다고 말하기엔 보드라웠다. 어떤 점이? 저의 앞에 있는 소년은 분명 의문을 가질 것이다. 어쩌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제 말에 반박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봐, 죽으라느니, 싫다느니, 증오스럽다느니, 제발 사라져 달라느니‥‥. 말하기도 버거운 저주의 언어를 모두 단물 마시듯 받아마시고 있는 나를 봐. 이것이 과연 그저 비뚤어지고 고통스러운 애정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존중'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겠지. 쿠로하는 생각했다. 평생을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다. 아니, 틀린가? 언젠가 저보다 한참 작은, 저의 어머니를 깊게 사랑했던 적 있는 것만 같지만, 하지만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글쎄, 인제 와서 고민해본들. 쿠로하는 헛웃음을 뱉어내며 손을 들어 신타로의 뺨을 어루만졌다. 괜찮아. 해치지 않아. 구태여 입 밖으로 낼 필요가 없었던 말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 자신을 향한 저의 질문에 쿠로하는 답한다. 부끄러우니까. 다 알고 있을 거야, 저 녀석은 모르는 게 없잖아. 쿠로하는 신타로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 아아, 사랑스러운 녀석. 그렇게 이야기하며 보드라운 살갗을 어루만진다.
"나는 너에 대해서 다 알고 있어, 히어로."
신타로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멍한 눈길로 쿠로하를 바라보다 저의 뺨에 올려져 있던 손을 강하게 쳐내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뒷걸음질 칠 뿐이다. 쿠로하는 덩그러니 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은 아프지 않았다. 손은, 손은 아프지 않았다. 얼마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붉게 물든 손등과 신타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 이 또한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으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가슴 왼쪽이 욱신거린다. 그는 빈손을 거둬들여 자신의 왼쪽 가슴에 얹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쿠로하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신타로의 얇고 가는 팔목을 잡아당긴다. 동시에 신타로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가만히 저를 바라본다. 이, 이거 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잡힌 저의 팔목을 반대쪽 손으로 잡아 어떻게든 도망치려 든다. 쿠로하는 좀 더 강하게, 좀 더 강하게 그의 팔을 잡아당긴다. 끌어안기 위해서, 입 맞추기 위해서,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허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런 저의 마음은 알지 못한 채. 신타로는 입술을 꾹 깨물고 손을 들어 저의 뺨을 강하게 갈긴다. ‥‥어째서? 쿠로하의 입 밖으로 의문이 샌다. 제발 꺼져‥‥. 고개를 푹 숙인 신타로를 가만히 바라보며, 쿠로하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꾹,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씹는다.
왼쪽 가슴의 통증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 쿠로하의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마치 불에 올린 초콜릿처럼 썩어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 감정이라는 것은 점차, 점차, 점차, 점차, 저의 마음의 틈을 비집고 흘러나와 기도를 타고, 몸속의 모든 신경을 타고 흘러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중추신경에 커다란 흠집을 내며 꽂힌다. 아아, 아아아! 아아. 그는 말을 잃었다. 그는 증오에 빠졌다. 너,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쿠로하가 이야기한다. 신타로는 잠시 영문도 알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쿠로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고 말끝을 흐리며 뒷걸음질 친다. 그 순간, 신타로가 저를 피해 빠져나갔던 그 순간. 쿠로하는 신타로의 얇고 하얀 목을 자신의 손으로 꽉 쥐어 들어 올렸다.
"어떻게 해도 사랑해주지 않는구나."
그럴 바에는 죽여, 죽여버려. 차라리 죽여버려. 쿠로하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지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여. 몇 번이고 뇌를, 귓가를, 가슴을, 온몸을 내리치는 그 달콤한 목소리에 쿠로하는 현혹되듯 신타로의 목을 감싼 손에 힘을 넣는다. 놓치지 않아. 놓치지 않을 거야. 가지지 못한 장난감을 보며 울부짖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좀 더 원활한 애정표현을 위해 그의 목을 강하게 감싸 쥔 채 벽으로 몰아붙여 높이 들어 올린다. 켁, 커억, 소년은 어떻게든 호흡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둥 거리고,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곧 눈가에 고인 눈물을 털어낸다.
신타로는 눈물을 흘린다. 숨이 막힌다, 목을 고통스럽게 누르는 힘에 절로 눈물이 난다. 통곡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털어내는 데 그쳐 그는 몇 번이고 간절하게 기도하며 눈을 부릅뜬다. 신이시여, 존재하신다면 제발 이 악마가 그만 나를 포기하게 하소서. 몇 번이고 같은 구절을 외우고, 외우고, 외우고, 외우면서도! 단 한 번도 저를 도와주지 않는 신이라는 것의 존재에 대하여 신타로는 저의 피로 가위를 그린다. 그딴 건 없어. 구원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아아, 외로워라. 아아, 서러워라! 그는 가까스로 팔을 들어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을 부여잡는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알고 있었다. 쿠로하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들. 신타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 그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제부턴가, 쿠로하는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신타로는 저의 귀를 의심한다. 몇 번이고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몇 번이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허나 그는 깨달았다. 그리 말하는 그는 진심이었다. 부정할 수 없다. 내칠 수 없다. 증오스러움은 끓어오르다 점점 사그라져 간다. 동정심만이 온몸을 지배하고, 그를 향한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밴다. 허나, 신타로는.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때로는 어떠한 감정에 눌리는 옅은 감정이 있다. 분노와 증오, 공포는 자극적인 감정에 속한다. 한 번 몸에 새겨진 그 감정들은 결코 몸에서 떼어낼 수 없다.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없는 것이라고! 처음부터 왜 그랬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왜 그랬냐고. 아아. 신타로의 속 안으로 썩어 문드러진 말들만이 쌓인다. 일말의 안타까움은 다시 분노로 변해 자신의 몸을 지배한다. 신타로는 쿠로하가 두려워 다가갈 수 없다. 그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려 노력조차 할 수 없다. 그래, 그럴 수 없다. 신타로는 알고 있었다. 신타로는, 키사라기 신타로는‥‥‥.
나는 너를 사랑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해. 나는 너를 돌아가는 목공용 톱에 갈아서 뼈와 피와 살을 남김 없이 모두 마시고 싶어. 나의 몸속에 담아두고 싶어. 꾹꾹 눌러 담아서, 더는 압축되지 않을 정도로 눌러 담아서. 너와 함께, 너와 함께! 너와. 함께. 극단적이며 극적인 문구들의 나열, 그 속에서 신타로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눌러 밀친다. 나는 네가 두렵다. 나는 네가 미친 듯이 두렵다. 신이 있다면 엎드려 빌고 싶을 정도로 두려워. 두려워. 두렵다. 증오스럽다, 끔찍하다. 허나, 허나, 허나‥‥‥. 아아! 신타로는 탄식한다. ‥‥‥사랑해. 자신이 흘리고 있는 액체의 색처럼 한없이 붉은 말. 자신이 이제까지 나열해두었던 그 모든 것들과 극적인 대조를 보이는.
신타로는 눈을 감는다. 부유한 노예, 녹지 않는 얼음, 타지 않는 불, 날 없는 칼, 화려한 외면, 피 흘리는 영혼, 하나인 극단, 그리고 그것들의‥‥‥. 그리고 그것들의. 극적으로 대조되는 그 모든 단어가 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본인의 감정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것인지, 그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며 저의 야속함을 자랑한다. 신타로는 천천히 눈을 뜬다. 짜내지듯 주어지는 손의 힘에 그는 더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헛웃음을 짓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흘러 들어오는 고통에 담담해진다.
신타로는 알고 있었다. 쿠로하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 자신 또한 그 마음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언제부터였을까, 긍정적인 감정의 교류라고는 일절 없었던 그 인연의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게 된 것은. 허나,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래, 이게 가장 중요한 거야. 신타로는 생각한다. 둘은 어울릴 수 없다. 둘은, 사랑할 수 없다.
이제 그만 악마가 나를 포기하게 하시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어긋난 것이다. 신타로는 다시 한 번 있을 수 없는 신께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목을 죄고 있는 악마를 향해 눈물 젖은 부탁을 해본다. 모든 것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다시 한 번 희망을 걸며,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천천히, 천천히, 빠져들었다.
떠났다가 다시 오라. 내게 머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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