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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하루신] 산 사람, 죽은 사람, 후회의 몫










[BGM] 타루 - 여기서 끝내자









 



 "저는 선배가 살아주길 바랐어요." 

  지금 와서 이야기한들 당신에게 닿지도 않겠지만. 신타로는 들고 있던 야생스타티스 꽃다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굽혀 비석과 키를 맞췄다. 처량하게 쭈그려 앉아 하염없이 무덤 위를 바라보고 있는 꼬락서니란. 저 좀 안타깝지 않아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꾹 삼켜 쌓아놓고 손을 뻗어 새겨진 이름을 따라 천천히 쓸어나갔다. 도대체가, 왜 그랬어요? 살아달라고, 살아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지금 와서 원망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제가 더 힘들 거라는 것도‥‥. 거기까지 이야기하며 지그시 눈을 감자 심장이 아려오는 것이. 아, 그는 살짝 목소리를 토했다. 왈칵왈칵 올라오는 게‥.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는 인상을 구기고 눈물 대신 흐, 하고 작게 웃음을 흘리며 이번에는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며 마른세수를 했다. 

 

 "치료받아요." 

 "‥어차피 알잖아, 신타로. 더 이상은‥‥" 

 "치료받으라고요! 살 수 있다잖아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더라. 신타로는 기억을 되살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글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느냐. 그것을 차례차례 짚어나가다 보면 아마도 끝이 없지 않을까. 그 사람이 태어난 시점부터? 그 사람이 자신과 만나게 된 시점부터? 저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시점부터? 아, 하나도 모르겠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저의 눈앞에서 돌아가는 필름을 바라보는 것에 충실하기로 했다. 저가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좀 더 좋은 기억으로 떠올렸으면 좋았을 텐데. 

  신타로는 벌겋게 오른 얼굴로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하루카는 보다 온화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서 벽에 기대어 앉아 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너무나도 편안했을 그 모습이 너무나도 처량하게 보였기 때문에 신타로는 더 화가 났다. 차라리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저의 옷깃이라도 잡으며 울지. 치료받겠다고,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울기라도 해주지. 담담히 나는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괜스레 서러워 그는 훌쩍이고 있었다. 하루카는 팔을 뻗어 저의 옆에 있는 의자를 툭툭 두드리고는 고갯짓을 했다. 소년은 입술을 꾹 깨문 채로 붉은 져지의 소매로 눈물에 젖은 뺨을 대충 닦아내며 천천히 자리에 앉아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세게 닦아냈는지 소매가 지나간 자리에서 열이 오르며 쓰라림을 느낄 지경이다. 그런 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하루카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신타로의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쓸어내렸다. 

 "빨갛게 올랐어, 신타로. 얼마나 세게 닦은 거야?" 

  지금 누가 누구 걱정을!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꾹 눌러 담은 채, 신타로는 눈을 감고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그거 하지 마요, 선배. 진짜 미워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루카와 눈을 마주하니, 청년은 둥그렇게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하하,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래, 그랬구나. 미안해. 이해한다는 듯 뺨을 살살 쓸어내리던 손을 들어 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연신 그를 노려보고 있자니 그는 미안해. 라고 이야기하며 빙그레 웃는다. 그 모습이 밉다. 그게 밉다. 그게 밉다는 거야. 

 "미안하면 치료받으세요." 

 "미안‥‥." 

  신타로는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려 주먹을 쥐었다. 허벅지 위에 자리하고 있던 손이 주먹을 쥐자 더욱 거세게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해서. 아, 곧 어깨를 들썩거리며 뚝뚝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신타로는 곧 하루카의 팔을 내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쩜 이렇게 잔인하세요. 어쩌면 이렇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석에 기대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찬 겨울밤의 바람에 눈을 뜬 신타로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 역시 아무도 없다. ‥‥이런 시간에 사람이 있는 게 이상할지도. 읏차, 자리에서 일어난 신타로는 대충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풀이 잔뜩 묻었을 엉덩이를 털어내고는 코코노세 하루카, 그 이름이 써진 비석 위에 손을 올렸다. 더는 아프지 마요. 나, 이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까. 응이라고 대답해줄까, 알았다고, 고맙다고 대답해줄까. 신타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편안하다면 그걸로 됐어요. 그걸로도 나는 충분해요, 선배.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는 천천히 비석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어둠도, 묘지도 싫어해요. 왜? 걷기 시작한 저의 머릿속으로 당신의 목소리와 거기에 답하는 지난날의 저의 목소리가 울린다. 왜냐니‥‥, 으윽, 그야‥‥. 저가 답하지 못하고 눈길을 돌리자, 청년은 혹시 무서운 거야, 신타로? 장난스레 물어온다. 아니거든요! 입을 삐죽이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농담이야~ 농담, 하며 능청스레 웃는 모습에 눈이 아리다. 공동묘지 밖으로 나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내는 가로등과 마주하자 또 다른 지난날이 떠올라 저의 머리를 스친다. 그날 밤, 내가 눈물 흘리며 병실에서 뛰쳐나왔던 그 날 밤. 나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미친 듯이 병원 주위를 걸으며 생각을 돌렸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 어쩌면 괜찮을지도‥‥. 그리 헛된 기대를 반복하며 근처에 있던 가로등이 희미한 불빛을 내며 켜지기 시작하던 때에, 나는 드디어 당신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생각을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설득하자. 어떻게든 당신이 내 옆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무리 결심했다고 한들 세상에는 마주하기 전까지 두려운 게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당신과 마주하는 일이 그랬다. 혹시라도 당신이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당신이 나에게 더는 신경 쓰지 마라, 그리 이야기할까 나는 그것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신타로는 하루카의 병실이 있는 7층까지 겨우 올라와서 숨을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아, 힘들어.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는 잠시 계단에 주저앉아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몸을 일으켜 병실로 향했다. 

  어쩌면 내가 그 날, 당신에게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면 나는 결코 당신을 보낼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길고 긴 복도가 무서워 무작정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희미하게 빛을 내는 초록색의 비상구 안내등에 의지한 채로 빠르게 걸음을 옮겨 당신의 병실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려 했다. 

 "살고 싶어‥‥, 살아있을 수 있게 해줘‥."

  훅. 신타로는 숨을 멈췄다. 숨을 멈추고 가만히 병실 문앞에 서서 흐느낌을 들었다. 무언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거친 파도가 자신을 향해서 곧바로 달려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자신을 덮치고 자신의 숨을 틀어막았다. 온몸에 난 숨구멍을 모두 틀어막아 더 이상은 자유롭게 숨 쉴 수 없도록 막아버린 것이다. 신타로는 숨을 멈추고, 가만히 흐느낌을 들었다. 그것은 확실한 하루카의 목소리였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하지만 아프고 싶지 않아‥‥. 더 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아, 신타로‥. 이제 그만하고 싶어…." 

 자신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한 마디에 눈물이 났다. 동시에 그것을 바라면서도 이룰 수 없는 하루카의 마음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차마 소리 내 울지 못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억누른 그는 끄윽, 끄윽‥ 그렇게 서러운 소리를 내며 한참을 울었다. 아아, 아아‥. 그는 미끄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하루카의 흐느낌이 잠잠해질 때까지, 하루카가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잠이 들 때까지. 그는 거기서 한참을 울다가, 하루카가 잠이 들어서야 살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가만히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아 하얀 피부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겠지, 신타로는 담요의 끝을 잡고 아주 천천히 하루카의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손으로 하루카의 머리를 살짝 쓸어준 다음, 고개를 숙여 잠든 얼굴에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손을 뻗어서, 하루카의 크고 하얀 손을 잡아 꼭 쥐었다. 

 "선배가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러니까, 선배의 선택에 따를게요."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하루카가 하고 싶은 대로, 그가 가장 바라는 대로 하도록 하여준 것. 그것은 신타로의 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으며, 멋진 선택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응.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신타로는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자 수많은 사람이 서로 손을 붙잡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밝은 빛이,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이 보였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골목길, 그리고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가로등. 그는 그 사이에서 소매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아, 진짜 아니에요. 그건 제 인생에서 최고로 잘못된 선택이었어요, 선배. 진짜로‥‥. 그는 메인 목소리로 연신 그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쳐들고 아, 아, 아아‥‥. 그런 탄식을 했다. 저의 머리 위로 그날과 같은 달빛이 쏟아지는 것이 너무나도 서러워서. 당신은 왜 여기 없을까. 나를 꼭 두고 가야만 했어요? 나를 버리고‥‥. 

  나는 당신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었다. 원망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신에게로 돌아갈 때 걸었던 그 길과 앞에 놓인 두 길 중 아무것도 고를 수 없게 되었다. 당신이 아픔을 버리고 나에게 남긴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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