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카게프로

[쿠로마리] 무지에 대한 사죄





















  저기, 여왕.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어? 도대체 몇 번째일까. 마리는 그것을 세지 않기로 했다. 반복되는 것을 세고 있자니 마치 누군가가 저의 목을 죄고 숨을 끊어놓으려 드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종종 있어서. 반쯤 포기했다는 말을 떠올렸지만, 아니야. 아니야. 나는 그래도 모두랑 같이 있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니 그저 세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변명하며 바닥에 펼쳐진 푸른색의 치맛자락을 꾹 부여잡았다. 청년은 매번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 좋아했던 친구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고 홀로 남은 제게 와서 손을 뻗는다. 저기, 여왕.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어? 매번 똑같은 질문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그저 꾹 입을 다문 채로 금방 흘러내릴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눈에 걸린 눈물을 삼켜내며 그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랑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물어온다면, 그래. 그녀는 알고 있었다. 허나 두려워져서, 그러니까……. 제 앞에 선 이 남성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될 일들이 두려워져서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는 매번! 매번! 매번! 똑같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을 갈기갈기 찢어 한 덩어리의 살아 숨 쉬는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이 삭막한 공간에 흩뿌리며 묻는다. 그것이 괴로워서, 더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같은 것 보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꾹 입술을 깨물고 달싹거리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청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꽤 경청하는 듯 보였으나 단지 보이는 것,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어쩐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조금이라도, 지금 이 순간의 일로 네가 우리를 포기했으면 좋겠어. 여전히 그 생각을 하며, 사랑이라는 건……. 울먹거리며 그리 중얼거릴 뿐이다. 



  쿠로하는 소녀를 사랑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명확하게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말이다. 그저 제가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 말하기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솔직히 어찌 되었든 상관없지 않나 싶었다. 왜냐하면, 결국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 있대도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테고. 만일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꾸준하게 저를 미워할 것이니. 결국 어느 쪽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내가 손해를 볼 것도 없지요. 아주 어쭙잖고 좆같은 생각. 저 자신에게 모멸감이 들 정도였으나, 어쩔 수 있나. 본디 이렇게 생겨먹은 생물이잖아? 그것을 변명으로 하여 매번, 매번, 매번. 매번!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눈앞에서 찢어발기며 한 주먹의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벽과 바닥에 흩뿌리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살인을 한다, 그 행위 자체에 대한 흥분? 아니, 내가 그 모두를 찢어발기는 순간에 비로소 닿아오는 시선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계속해서 행위를 반복하는 것도. 그래, 어쩌면 그 순간에 향하는 시선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끄러미 자신에게 사랑에 대하여 설명하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래.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의 뺨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녀는 역시나 두려움에 빠진 얼굴로, 여전히 자신과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눈물만 뚝뚝 흘려대며 멍하니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싫음에도 싫어할 수 없어서. 그는 혀끝을 맴돌던 말을 꾹 삼켜낸 채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왕, 당신은 저들을 사랑하고 있지. 그렇다면 한 번 더. 당신은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 저도 모르게 끌어올려 지기 시작한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고 그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그의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지독히도 우스운 일이지마는 어찌할 도리가 있을까. 한 번 발을 딛고 빠지기 시작한 늪에서는 벗어나 올 수 없었고, 그는 그저 그곳에 서서히 빠져들기를 택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을 처참하게 찢어발기는 일이라고 해도. 당신의 눈이 다시 한 번 나를 향할 수 있도록 해줘. 소원을 이루어주는 뱀이 가진 소원이라니, 어쩜 이리 우습기 짝이 없을까.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청년은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어떻게든 사랑받고 싶었어. 당신에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그는 숨을 삼켰다. 

' > 카게프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토신/쿠로신/카노신] 테스트용  (0) 2016.01.21
[세토신쿠로]  (0) 2016.01.20
[하루타카] 죽은 사람의 소망  (0) 2016.01.18
[쿠로신]  (0) 2016.01.17
[쿠로켄지] 배신의 대가  (0) 201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