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득 스스로가 부허하다고 느꼈다. 어째서? 그것을 물어온대도 어찌 답할 도리 없이 그저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매번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애써 그것들을 떨쳐내려 애를 먹었으나, 그것은 쉽사리 떨어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음, 신타로는 천천히 숨을 삼킨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더라. 천천히 머리를 굴려 발단을 찾지만 떠오르지 않아서. 아, 기억력도 녹슬기 시작했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이후, 그러니까. 모든 것이 끝나서, 더는 능력이라던가 아니면 루프라던가, 총을 맞는 일이라던가. 그런 것들과도 이별을 고한 뒤로는 확실히 점점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 같은 게 힘들어져서. 그랬었지. 신타로는 짧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것을 물끄러미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세토는 곧 몸을 일으켰다. 제 앞에 놓여있던 빈 머그컵을 집어 그것을 쟁반에 담았다. 그건 이상하네요, 혹시 신타로 씨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요? 그리 말하며 쟁반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 소년은 별안간 빈손으로 부엌에서 나와 제게 걸어왔다.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앉는가 싶더니만, 그것도 아니고 저의 뒤로 다가와 굳이 고개를 내밀고 몸을 끌어안는 이유는 뭔지.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접어 옆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세토의 얼굴이 보여서. 신타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키사라기 신타로에게 있어서 세토 코우스케라는 존재는 이상 그저 아는 동생 같은 녀석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도.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받아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매번, 머릿속에 들어있는 별 시답잖은 것을 들으며 답하면서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는 그에게는 신타로 또한 감사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가? 때때로 그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자면, 무언가 묘한 느낌이. 그러니까, 단지 그것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알 수 없다. 알 수 없음이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고사하고 제 틀에 박혀 지내던 것이 어제와도 같은데 어찌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대해 명확한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불가능한 일이었고, 불가능한 일일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세토는 가만히 신타로를 내려다보다가 지그시 감긴 신타로의 눈에 입을 맞췄다.
“저기, 신타로 씨.”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느긋이 눈을 뜬 신타로는 저를 내려다보는 세토와 눈을 맞췄다. 응, 세토. 나긋하게 내뱉으니 저를 바라보던 눈에 반짝 빛이 도는 것이. 아, 꽤 예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눈을 신타로는 미미하게 웃음 지었다. 저는 신타로 씨가 좋슴다. 느긋하게 말해오는 것에 괜스레 심장이 아려서.
“…나도 좋아해.”
짧게 중얼거리니 곧 눈을 휘어 웃어 보였다. 두근, 두근, 기분 좋은 떨림이 몸을 울렸다. 별안간 이 떨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잠시 고개를 저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소용이 없는 듯해서 그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눈을 흘겼다. …어쩌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제 말에 소년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저를 바라보다 울상 지었다. 좋아해 주시면 안 되겠슴까……. 글쎄,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장난스럽게 씩 웃어 보이니 소년은 저를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묻었다. 좋아해요. 목가에서 웅얼거리는 것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심장 한 구석을 근질거리게 만들어 신타로는 살짝 옷깃을 부여잡았다.
2.
쿠로하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얼마 전 새로 들인 샴푸의 냄새라고 했던가. 하여간, 저랑 어울리지 않는 걸 쓰고 앉아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뻗어 코끝을 간질이는 향의 원인을 살살 쓰다듬으니, 아래서부터 천천히 끄응. 작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 소리에 머리를 두어 번, 살살 더 쓰다듬은 청년은 머리칼에 고개를 파묻고 슬슬 눈을 감았다. 손을 뻗어 소년을 꼭 끌어안으니, 보드라운 살결이 손끝으로 닿아오는 것이 느껴져 슬슬 웃음이 샌다. 어쩌면 이리도 귀엽고 사랑스러울까. 마치 조그마한 몸집을 가진 한 마리의 새처럼 때때로 저를 향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면 심장 안쪽이 욱신거리며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 치고 오른다. 그대로 그것을 끌어올려 몇 번이고 입 맞추며 고마워, 사랑해. 그 한마디를 하면 될 것을. 그것이 부끄러워 그대로 말을 삼켜낸 청년은 입술을 비죽 내밀곤 매번 코웃음을 쳤다.
별로, 나 아니면 네 누가 네 녀석을 좋아하겠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 되려 제가 들어야하는 소리가 아니던가.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떠드는 입이 괜스레 야속해진다. 쿠로하의 그런 말에 신타로는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보고 있다가 허어, 작게 숨을 터뜨리며 이마를 짚는다. 이 정도 되면 심한 말이라도 입에서 튀어나올 법 하고만. 그것도 아닌 것이, 그저 눈을 흘기며 저를 노려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리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래, 알았어. 좋아해줘서 감사합니다. 두 손을 들고 그리 말하다 천천히 눈을 뜨며 올곧게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토록 좋아서. 제 얼굴 위로 무언가 붉게 피어난 것이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알면 됐습니다.”
멍청한 녀석. 몇 번이고 그런 자신에게 투정하며, 다음부터는 좀 더 제대로, 제대로, 제대로. 사랑한다고 말해보고 싶어서, 좋아한다고 말해보고 싶어서, 언제나 고맙다고 그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꼭 끌어안고 말해보고 싶어서. 쿠로하는 손끝을 움찔대다 손을 뻗어 신타로의 손끝을 겨우 잡고 숨을 터뜨렸다. ……뭐 하는 거야? 신타로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발정기 올 때가 다 됐나. 미심쩍은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입술을 달싹거리던 청년이 내뱉은 말에 그는 작게 웃었다. 사랑해라니, 부드럽게 말해오는 것이, 퍽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도.”
3.
카노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너, 뭐 하냐……. 제 눈을 가린 소년의 손에 신타로는 작게 입술을 달싹이다가 손을 들어 제 눈을 덮은 손을 꾹 눌러 잡았다. 너, 또 이상한 장난치려고 이러는 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몇 번이고 눈을 굴려가며 그 무엇이라도 눈에 담으려 끙끙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속 깊이 처박혀 있던 것이 끌려나와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터였다. 당황했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영 심심해지는 것이. 카노는 신타로의 어깨에 고개를 대고 속닥거린다. 나인 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 물으니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그제야 달싹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행동, 하는 녀석은 너 하나뿐이잖아.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말해오는 것에 괜스레 기분이 들떠서. 카노는, 그래? 되물으며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신타로 군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네. 묘하게 간질거리는 것이, 통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신타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물끄러미 카노를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별로, 잘 알고 있는 건 아닌데, 그냥 네가 너무 짜증나게 구니까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거든.”
“너무하네. 사람 마음에 비수 꽂는 거, 너무 잘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아무리 비수를 잘 꽂아도, 너보다 할까.”
무미건조하게 그리 말하니 저를 바라보던 눈이 휘어지며 웃음을 띠었다. 영 고까워서야. 눈을 가늘게 뜨고 소년을 바라보니 고개를 까딱이며 웃어 보이는 것에 몸을 흠칫거리며 신타로는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래~?”
……아무리 아니라고 이야기한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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