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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잊을 수 없는 것들 上




※ 사람에 따라 민감한 소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의학 용어와 지식은 맹신할 수 없는 것들임을 유의해주세요. ※














 "행잉(Hanging)[각주:1]?" 

  신타로의 물음에 그의 옆에서 연신 입술을 잘근거리던 타카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새 목을 매서 자살시도를‥‥. 수만 가지의 많은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때리며 지나친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하여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검은 눈동자가 보통 정신 사나워서야. 신타로는 제 뜻대로 되지 않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어떤 방법으로든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꾹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짚었다. 조금 전까지 환자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 온 탓인지, 아까 손에 쥐었던 차가운 콜라 캔의 냉기가 남아있었던 것인지 하여간 이마에 닿은 손이 몸서리를 치고 싶어질 정도로 찼다. 차갑고도 보드라운 손의 감촉이 이마에 닿아오자 신타로는 옅게 숨을 내쉬며 그대로 손으로 이맛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담당인 하루카 선배가 아니라 타카네 녀석이 직접 전하러 온 거라면. 어떤 결과가 났을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마음 약한 그 선배는 보나 마나 휴게실 의자에 홀로 앉아 좆같은 현자 타임을 즐기고 있을 테고, 똑같이 자살 시도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두운 휴게실 구석에 주저앉아 하루카가 하고 있을 생각을 그대로 돌려 하니 아랫입술을 물고 있는 이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이에 힘이 들어갔으니 절로 강한 압력이 입술을 짓누르고 그러자 별안간 참지 못하고 입술 끝이 펑 터져 줄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입술에서 흐르기 시작한 피를 이마를 쓸었던 손으로 톡톡 건들이며 피가 난다는 것을 확인한 청년은 한쪽 귀에 걸려있던 하얀색 수술 마스크로 대충 닦아내고는 그대로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뒤 쇠로 된 검은색의 쓰레기통이 흔들리며 밑에 깔린 대리석과 맞닿아 깡 소리를 낼 정도의 강한 힘으로 쓰레기통을 발로 갈겼다. 이윽고 한가로운 병원 복도를 울리는 싸늘한 소리와 함께 추운 겨울날 맨발로 바깥에 걸어나가 눈 쌓인 바닥을 걷는 것처럼 얼얼한 고통이 발끝에 돌았다. 

  느껴지는 아픔에 미미하게 인상을 구기는 신타로와 피가 고여 붉은빛이 도는 입술을 번갈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옅게 한숨을 쉬며 혀를 찼다. 그런 타카네의 행동을 눈치챈 듯 눈을 치켜뜨고 흘끔 이던 신타로는 별안간 다시 한 번 하순을 강하게 깨물고 달싹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씨발 내가 뭐라고 했냐. 그 환자, 보호자한테서 떼어놔야 한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잖아. 그 상태로 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고. 정신병이랑 귀신들림 하나 구별 못 하는 사람이랑 붙여놓고 뭐가 어째? 치료를 해? 어이가 없으려니까. 저번에 기억 안 나냐? 하루카 선배가 상담 한 번 해보겠다고 데리고 들어갔던 거? 내가 옆에서 다 보고 있었어. 근데 뭐가 어쩌고 어째? 귀신 들렸으니 반죽음을 쳐두면 괜찮을 거라고? 치료가 아니라 학대를 하시겠다는 분과 24시간 애를 붙여놓고 있는데 퍽 좋아질 수 있겠다! 막말로 집에 데려가서 폭력을 행사할지 어떨지 누가 알아? 애초에 담당 의사를 나나 쿠로하 씨발새끼가 아니라 하루카 선배로 박아놓은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었어. 씨팔. 발로 대가리를 걷어차도 끄떡없을 새끼들 놔두고!" 

  화가 나도 아주 단단히 난 모양이렷다. 평소 귀찮은 일이라면 말뿐이라도 죽어라 삼가던 녀석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제가 무어라 이야기하는지도 파악은 하고 있는지 막무가내로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허나 이 녀석뿐만이 아니라 분명 자신이 녀석의 입장이라도 이런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눈을 질끈 감은 타카네는 화통을 삶아 먹은 양 생각 않고 떠드는 신타로의 목소리에 고개를 쳐들고 그의 뒷통수를 강하게 갈겼다. 좀 조용히 말해! 이러다가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안 그래도 네 녀석 말 막 하는 개자식이라고 환자들 사이에서 소문 자자하거든? 말 막 하는 개자식은 내가 아니라 쿠로하 새끼겠지. 너랑 그 새끼랑 동족이라는 거 여기서 모르는 사람 있냐? 동족이라고 하지 마라, 좀‥! 

  호통에 정신을 차린 양 천천히 목소리를 줄이고 그제야 꾹 참았던 숨을 터뜨리는 신타로의 모습을 보며 타카네는 팔짱을 꼈다. 마치 누가 막무가내로 가져다 붙여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고 누르고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가라앉은 정적이라는 것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끙, 신타로가 작게 신음하며 입술을 달싹거리던 찰나 타카네가 말을 이었다. 하여간, 지금 하루카 녀석 멘탈이 반쯤 나간 건 네 말이 맞아. 그 녀석 워낙 그런 쪽에 민감한 녀석이니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툭툭 내뱉으며 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모습이 저희보다 어른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새삼스럽게도. 하, 짧게 숨을 내뱉은 신타로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분명 속으로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있을 터인데. 침착한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성숙함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인가, 결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질투를 느끼며 신타로는 갈색의 붙박이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뭉쳐 올려져 있던 하얀색의 의사가운과 검은색 레버 파일을 집어 들었다. 

 "하루카 선배, 지금 휴게실에 있지?" 

 "그럴 거야."

  타카네의 대답에 말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답한 청년은 그대로 여성을 뒤로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새벽 2시, 대부분 환자들이 모두 잠든 시각에도 대학병원 3층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조명은 환하게 켜진 채였고, 심지어 대기실의 TV까지 여전히 무수히 많은 웃음소리를 내며 떠들고 있는 상태니 완전히 말 다 했지. 신타로는 타카네에게서 받았던 검은색 레버 파일의 커버를 그저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것을 넘겼다. 글씨인지 점인지. 무수하게 많은 검은 글자들이 빼곡하게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타로는 글자의 밑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검은자위를 다그르르 굴려대며 빠르게 그것들을 읽어 나갔다. 환자 이름, 아마미야 히비야. 나이는 13살. 천천히 소년의 인적사항을 읽어나가던 신타로는 한쪽에 적힌 다섯 자의 이름에 눈을 굴리던 것을 멈췄다. 세토 코스케. 그러고 보니 이 환자의 응급처리를 맡은 건 이 녀석이었지. 별안간 은연중에 손가락을 들어 톡톡 이름을 두드리게 된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듯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신타로는 숨을 들이마셨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오지랖 넓은 새끼들이다. 제 입장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녀석들.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며 그는 장을 넘겼다. 



 "키사라기 신타로 선생님!" 

  새벽 3시 45분. 첫 응급환자가 발생한 시각이었다. 둥글게 뒤로 말아 묶은 흰 곱슬머리를 흔들거리며 바삐 복도를 뛰어다니던 작은 체구의 여성은 곧장 복도 정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휴게실의 문을 벌컥 열어 재꼈다. 꽤 뛰어다닌 모양인지 옅게 숨을 내쉬던 여성은 별안간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크게 숨을 터뜨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휴게실 의자에 앉아 계속되는 야간 진료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있던 세토는 멀뚱히 여성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어라, 마리? 여긴 무슨 일인가요?" 

 "흐, 으으~ 크, 큰일 났어!" 

  엑. 단지 큰일 났다는 말로는 부족한데. 그 이상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홱홱 고개를 저어대며 신타로를 찾던 마리는 이내 신타로가 휴게실 안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고개를 쳐들고 세토를 바라보았다. 시, 신타로는 어디 있어? 별안간 그렇게 물어오는 것에 세토는 눈을 끔뻑거리며 작게 웃었다. 신타로 씨라면 방금 막 수술 들어간 참임다.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라면서 불만스런 표정으로 커피 한 잔 마시고 사라졌슴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내뱉으며 웃는 세토의 모습이 퍽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서, 마리는 일순간 자리에 없는 신타로를 대신하여 신타로가 자주 누워 선잠을 자는 소파 위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따가 근데 마리, 그렇게 급한 표정으로. 무슨 일 있나요? 하고 물어오는 세토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마리는 세토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이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를 떠올려내고 아! 하고 작게 소리를 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세토! 지, 지금 당장 도와줘! 응급 환자야!" 

  그녀의 말에 청년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자 등받이에 걸려있던 의사가운을 서둘러 걸치고 옆에 있던 청진기를 목에 걸고 빠르게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미, 미안하네요. 시간을 너무 뺏어버려서, 위험함다. 어서 가죠, 마리. 그리 말하며 빠르게 걷기 시작한 세토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마리는 으, 응! 작게 대답하며 세토의 뒤를 따라 달렸다. 

 

  굳이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마리를 번쩍 끌어안은 채 빠르게 계단을 뛰어 내려온 세토는 응급실 앞에 다다라서야 그녀를 내려놓은 채로 빠르게 뛰어 응급실 안으로 향했다. 이쪽이야! 응급실 가까이에 오자 더 초조해진 듯 빠르게 뛰어 세토를 인도하던 마리는 한쪽 구석에 있는 간이침대 주변을 감싸고 있는 간호사들 사이로 뛰어들듯 파고들었다. 간이침대 위에 누워 옅게 숨을 내쉬고 있는 소년 주변으로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잔뜩 퍼져있었다. 제가 도착하기 전 몇몇 간호사들이 응급처치를 미리 해두었던 모양인지 간이침대 위로 깔린 푸른 담요 가득히 배어있는 피와 살과 맞대어진 거즈 사이로 꿀렁꿀렁 솟아오를 기세로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보며 세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간이침대 손잡이를 잡았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마리, 응급 수술 준비해줘요. 신타로 씨보다는 못하겠지만‥. 제가 들어갈게요." 

 "아, 알았어!"

  청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응급실 밖으로 달려나간 여성은 금방 청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아이, BT[각주:2]는 얼마나 됐죠?" 

 "얼마 안 됐어요. 여기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이 있다고 했어요." 

  세토는 꽉 간이침대의 손잡이를 붙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제발. 제발. 제발. 이번에도 운이 따르게 해주세요. 그 순간, 커튼 너머에서 들려온 수술실 잡혔어요! 하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건넨 거즈를 소년의 배 위에 덮어 마저 지혈한 채 침대를 끌고 이동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달리는 속도와 침대의 바퀴가 움직이는 속도가 퍽 빨랐다. 누구 하나 넘어지지 않을까. 아슬아슬하게 속도를 내기 시작한 세토는 곧 열리는 수술실 문을 보고서야 먼저 환자와 간호사들을 들여보낸 후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펜과 종이에 짧게 서명하고 그것을 마리에게 건넸다. 

 "마리, 일단 응급수혈요청서[각주:3]를 가져가서 보호자한테 서명을 받고 수혈할 준비도 해줘요. 부탁합니다." 

  제 손에 종이를 쥐여준 뒤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 손길에 마리는 고개를 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 수술도 힘내. 미처 마리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채 부탁해요! 그렇게 말하며 뛰어들어간 그를 닫히는 수술실 문 사이로 바라보던 마리는 재빨리 뒤돌아 총총 뛰기 시작했다.



  수술의 결과, 신타로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종이를 쓸어내리다 맨 아래에 위치한 작은 상자를 손끝으로 툭툭 건들여댔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던 그 수많은 상상이 서서히 수그러든다. 수술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문제없는 성공. 애초에 그 녀석, 실력이 없는 의사가 아니니까. 짤막하게 덧붙이며 느긋이 눈을 깜빡거리던 그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래, 이 모든 일은 그 이후. 뒤늦게 세토의 앞에 나타난 어느 이로 인해 시작되었다. 그는 천천히 종이를 넘겼다. 



  세토는 쓰고 있던 하얀색 마스크를 벗으며 수술실에서 나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응급실 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축 처진 눈꼬리의 대체로 편한 인상의 중년 여성과 눈을 맞추었다. 안절부절,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선해서.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소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에게 아이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해주기 위하여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자녀분은 괜찮아요. 수술은 잘 마무리됐슴다.

  청년의 말에 눈을 깜빡거리며 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여성은 곧 벌떡 소파에서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연속되는 감사인사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손을 내젓자 여성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다. 그 모습에 눈을 깜빡거리다 눈을 휘며 씩 웃어 보인 청년은 고개를 마주 숙였다. 아님다. 늦지 않게 자녀분을 데리고 와주셔서 다행임다. 조금만 더 늦었거나 상처가 깊었어도……. 분명 좋지 않았을 테니까요. 현명한 선택을 해주셨기 때문에 이리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검다. 그리 말하니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한 눈동자에서 뚝뚝 눈물이 흘러 떨어진다. 아, 아무래도 너무 당황하게 했나. 몸을 움찔거린 세토가 저, 저기. 말을 더듬으며 손을 뻗었다. 의도치 않게 겁을 준 걸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제 자식이 칼을 맞았다면 겁이 날만도 한데. 미처 그 부분을 신경 쓰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 한층 붉어진 얼굴로 연신 손을 흔들어대던 청년을 의식한 여성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낸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안심해서…." 

 "아, 그, 그렇군요……."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세토가 환자의 사생활에는 절대로 개입하지 마라. 그가 끝까지 신타로의 한마디를 가슴속에 새겨넣은 채 그녀를 지나쳐 휴게실로 돌아왔다면 그 모든 일은 여기서 끝났을 터였다. 몇 번 손을 뻗어 여성의 등을 두드려준 청년은 곧 작게 신음하며 그럼, 슬슬 가볼게요. 하고 가벼운 묵례를 했다. 그 뒤 그가 통 가시지 않는 찝찝한 기분을 가슴 속에 눌러 담은 채 여성을 지나치려 한 때였다. 잠시만요! 여성의 목소리가 복도 가득히 울려 퍼졌다. 여성의 말에 고개를 까딱거리고 눈을 끔뻑거리며 다시 그녀를 되돌아본 그는 그녀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음을 무심코 인지할 수 있었다. 뭐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청년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요?" 

  여성은 무언가를 크게 고민하는 듯했다. 눈에 띄게 떨리는 몸을 주먹을 쥠으로써 어떻게든 조절해보려는 듯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녀의 몸은 보고 있는 세토가 다 불안해질 정도로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무얼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거지? 세토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의 가벼운, 종종 무게감을 가진 가설들이 뛰쳐 들어오며 혼란스럽게 날뛰고 있었다. 세토는 머리끝까지 다다른 커다란 의심의 손 하나를 고개를 거칠게 흔들어 댐으로써 떨쳐냈다. 

 "아이, 며칠이든……. 절차를 밟고 돈을 내면 입원할 수 있는 거죠?" 

 "아, 물론임다. 어차피 지금 아이의 상태로 봐서는, 일단 며칠이든 입원은 불가결하니까요. 그런데 그건 어째서?" 

 "……사정이 있어서, 아무래도 아이를 자주 보러 오지는 못할 것 같아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선생님께서……." 

  사정? 작게 되물은 세토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사정, 사정이라고 함은……. 말끝을 흐리는 여성의 모습이 퍽 수상해서야. 떨어트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금 들러붙기 시작하는 잡념들을 애써 떨치며 여성을 향해 웃어 보인 청년은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종종 들러주세요. 부모가 옆에 있는 게…,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니까요." 

  청년의 말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여성은 그럼 이제 아이를 보러 가볼게요. 그리 이야기하며 짧게 묵례를 했다. 자신을 지나치기 시작한 여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세토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작은 목소리로 여성을 불렀다. 몸을 크게 움찔대는 것이, 몇 번이고 반흔문신처럼 눈알에 새겨지는 느낌이 든다. 뇌를 헤집으며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한 줌의 환상을 내칠 수가 없다. 그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천천히 말문을 텄다. 

 "아이의 배에 난 상처……, 다른 아이들처럼 어디서 놀다가 다쳤다기에는 너무 깊은 상처였슴다. 마치, 칼에 찔렸던 것 같은…." 

  아마도 뒤에 생략된 말은 무슨 일이 있었냐. 여성은 천천히 몸을 돌려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 세토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끝으로 모습을 감춘 여성의 뒤를 눈으로 좇던 세토는 시선을 거두었다. 좀 더, 좀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느낌이 둥둥 심장을 울렸다. 




  휴게실로 향하는 철문 앞에 선 신타로는 보고 있던 검은색 파일을 소리 나게 닫으며 멍하니 문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니 먹먹하던 귀가 탁 뜨이기 시작하며 다시금 소란스러운 병원 내의 소리가 귀에 때려 박힌다. 천천히, 옅게 숨을 내쉬던 그는 가늘게 눈을 내리뜨고 금속으로 된 손잡이를 우두커니 내려보고 있다가 느긋이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문고리를 돌리며 천천히 문을 밀기 시작하니 온갖 조명이란 조명은 다 써먹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병원의 복도와는 다른 깜깜한 공간이 눈에 들었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발을 들이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몰려오는 어둠과 싸늘한 공기에 신타로는 꼴깍 침을 삼켰다. 

 "선배." 

  그가 코코노세 하루카를 찾았을 때, 바로 앞에 놓여있을 테이블 건너편에서 작은 흐느낌이 들린 것만 같았다. 

 

  1. 행잉(Hanging) : 목매달아 자살을 시도하는 것. [본문으로]
  2. BT(Bleeding time): 출혈 시간 [본문으로]
  3.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헌혈자검사 또는 수혈 전 검사를 모두 완료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이것을 작성, 혈액 은행으로 보내야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