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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쿠로켄지] 배신의 대가















  선생은 아내와 딸을 인질로 잡혀있다는 걸 벌써 잊었어? 쿠로하는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키를 손가락에 꽂아넣고 빙글빙글 돌려대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켄지로는 유리로 된 벽 밖으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몸을 들썩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여유롭게,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했다. 켄지로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억만 읽히지 않으면 돼, 그렇게 되면 그 모든 것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터였다. 애써 철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쿠로하와 얼굴을 마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자식. 눈에 띄는 색이라고는 노란 눈동자의 색뿐이렷다. 마치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켄지로는 바로 앞에 있던 검은색의 가죽 의자를 빼고 털썩 주저앉아 몸을 젖혔다.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 모양이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어 보이자 쿠로하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이내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그래, 네 녀석은 거기 휘말리지 않은 모양이군. 다행입니다. 어쩐 일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녀석이든가? 위화감을 느끼며 쿠로하가 다가오는 것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던 켄지로는 이내 홱 상체가 끌어올려 지자 몸을 움찔거리며 쿠로하와 시선을 마주했다. 노란색의 눈이 번뜩거리며 마치 자신의 온몸을 훑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나, 아직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것을 보면 필시 자신의 기억을 읽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지. 최소한의 신뢰는 있다, 뭐 그런 건가? 눈을 가늘게 뜬 켄지로는 이거 놓지그래. 그리 말하며 쿠로하의 팔을 붙잡았다. 
 "안 되지. 그렇게 말하고 그냥 넘어갈 줄 아셨나, 선생? 선생이 기밀 정보를 그 벼룩 같은 새끼들에게 노출했다는 걸 내가 모르고 이 자리에 와서 심문했을 거라고 생각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든다. 윽, 작게 신음하며 몸을 움찔거린 그는 입술을 씹었다. 그리고 곧 천천히 입을 열면서 정말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리 답하며 살살 웃어 보였다. 제발 통해라, 제발 통해라, 제발 통해라. 제가 죽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아내와 딸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것만은 어떤 방법을 써서든 막아야만 했다. 꾹, 좀 더 힘을 실어 쿠로하의 팔을 눌러 잡은 켄지로는 내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면, 분명 도망쳤겠지. 그렇지 않아? 그리 덧붙이며 어떻게 해서든 매서운 쿠로하의 시선을 피하려 들었다. 쿠로하는 영 탐탁치 않은 눈길로 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곧 허.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리고 잡고 있던 더욱 강하게 잡아 올렸다. 
  순간적으로 사람의 얼굴로 인하여 시야가 어두워지고 입술을 툭툭 두드리던 낯선 감촉이 곧 굳게 닫혀있던 입술을 벌리고 들어와 입속 구석구석을 헤집어댄다. 그 싸한 기분에 몸서리를 쳤지만 떠오르는 두 사람의 얼굴에 차마 반항하지도 못한 채로 그저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눈을 질끈 감고 있을 뿐인 켄지로의 얼굴에 한가득 열이 찼다. 달아오른 숨이 터지며 맞물려있던 입술이 서서히 떨어지고 그 사이로 타액이 엉켜 흘렀다.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 그대로 켄지로의 몸을 밀쳐낸 쿠로하는 책상 위에 있던 티슈 한두 장을 뽑아 자신의 입술을 슥 닦아내고 그대로 그것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정의를 지키는 히어로 노릇 하려다 훅 가는 수가 있어. 선생." 
  미미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기분 나빠서, 입술 끝으로 흘러내리는 타액을 미처 닦아내지 못한 채로 켄지로는 그저 주먹을 꾹 쥐고 사무실을 나가는 쿠로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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