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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쿠로켄지] 정의할 수 없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한 것들이지?" 

  그야말로 묘한 기분이 따로 없었다. 매번 무언가에 분주해져서는 이때까지 모아놓은 정보들을 다 한곳에 쌓아놓고 읽어갈 때의 그 얼굴이란. 참으로 멍청하기 짝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쿠로하의 물음에 켄지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내를 한 번 더 만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네 녀석이 그리 말했지. 참으로 무미건조하고 설움 가득한 목소리가 따로 없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한 번 더는 무슨. 제 목숨마저도 빼앗겨 죽어버릴 마당에 이미 뒤져 멀리 떠난 사람을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허. 쿠로하는 숨을 터뜨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물끄러미 하얀 가운을 입은 등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곧이어 고개를 돌리며 턱을 괴었다. 

 "네 녀석과 나의 사이는." 

 "파트너지." 

  어조 없는 저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툭 뱉어오는 답이 여간 증오스러워야. 청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파트너라, 거 참 우스운 일이야. 은연중에 그렇게 말해버리는 것이다. 그의 말에 또 다른 서류뭉치를 뒤적거리고 있던 켄지로는 느긋이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냐. 지금 바쁘니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가 눈빛으로 날아와 제 가슴을 후비는 듯했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그리 물어오는 목소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목소리에 쿠로하가 가지고 있던 그 모든 흥미는 일순간 얼어부터 열기를 잃었다. 

  그는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 저의 앞에 놓은 머그잔의 손잡이를 엄지와 검지의 끝으로 살짝 잡아 그대로 끝을 들어 올렸다. 컵이 기울어지자 그 안에 고여있던 것이 금방에라도 바닥을 향해 쏟아질 기세로 흘러내렸다. 흔들흔들, 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은 공기 중에 떠다니던 먼지를 먹어 뿌옇게 변한 채였다. 손을 흔들거리자 그 뿌연 물속에서 반사되고 있던 켄지로의 모습에 찬찬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쿠로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곧 컵을 툭 떨어뜨리고 젖어가는 붉은 카펫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또 시작이군. 켄지로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꽤 두툼한 카펫이 컵을 받아내어 날카롭게 유리가 퍼지지는 않았으나 그것보다 더 고약한 문제가 있었다. 서서히 젖어들어 가는 카펫을 이마를 짚고 바라보던 켄지로는 고개를 들어 쿠로하를 바라보았다. 또 뭐가 문제람. 그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아내고, 뭐. 그런 짧은 물음을 툭 던졌을 뿐이다. 물끄러미 카펫을 내려다보던 쿠로하는, 곧 고개를 들고 켄지로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샐쭉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선생과 내 사이 말입니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켄지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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