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시간 좀 있어요?"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턱을 괸 채 조그마한 분홍색 입술을 달싹거리며 물어오는 것이 퍽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쩐 일로 날씨가 좋다 했더니만, 다 이런 걸 위해서였나. 18년 모태솔로 인생에 새어들기 시작한 불빛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이 모든 것을 축복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신타로는 작게 숨을 삼켰다. 자, 진정하자. 키사라기 신타로. 여기서 당황해서 허둥거리면 오래간만에 찾아온 기회는 물거품이 되리라. 지난 몇 년간 쓰라린 아픔과 기억으로 꾸준히 배워왔던 모든 것을 여기서 쏟아부어야만 한다. 흥미 없는 사람처럼 부드러운 눈웃음을 짓는 여성을 가만히 바라보던 신타로는 꼴깍, 마른 목에 침을 한 번 삼키고 옆에 놓여있던 커피잔을 들어 입술에 대고 기울였다.
차가운 액체가 하순을 타고 천천히 입안으로 흘러들어 마른 혀를 천천히 적시기 시작하며 씁쓸한 맛의 끝으로 부드러운 달콤함을 선사한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것도 오늘만큼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꿀꺽 액체를 삼켜낸 신타로는 조심스럽게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쓰고 있던 흰색 노트북을 지그시 눌러 닫아 정리했다. 이렇게 예쁜 여성분이 원하는 시간이라면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소녀만화의 대사 하나를 떠올려낸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뱉고 눈꼬리를 휘어 웃어 보였다. 일단은 성공한 듯해서, 그녀는 어머나. 하고 작게 소리 내고는 웃어버린다. 그럼 장소를 좀 옮길까요? 여기는 좀 그래서‥. 성질이 급한 편이던가, 아마도 술을 마시고 싶다는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이런 대낮부터? 일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뭐. 상관없나. 그는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어디로 옮길까? 약간의 위화감이 덮쳤지만 손해 볼 것은 없었으므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진즉 자리를 옮기자고 했던 게 이해가 되지. 바의 한구석, 가만히 앉아서 턱을 괴고 있던 신타로는 앞에 놓인 술잔을 천천히 기울였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한 여성은 아무래도 화장을 고치러 간 듯 보였다.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지 않겠나. 아량 넓은 척 느긋이 있어도 초조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법이건만 애써 꾹꾹 숨기며 고개를 까닥이는 꼬락서니가 퍽 우스워서야. 저 자신에게 헛웃음을 친다. 그때였나, 제 옆으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왔어요?
씨발 이게 뭐야. 옆을 돌아본 신타로는 숨을 터뜨려 내쉬었다. 와야 할 웨이브 머리의 여성은 어디로 가고, 검은 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색의 폴라티 위에 검은색의 코트를 걸치고, 검은색 구두까지. 처음 보는 남성이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남성은 가만히 저를 내려다보며 씩 입꼬리를 끌어 웃는다. 그리고 곧바로 제 건너편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눈을 휘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그 여자라면 돌아갔어. 여기까지 네 녀석을 데려오는 것이 그녀가 할 일이었거든. 허. 그는 숨을 터뜨린다. 뭐. 나 아니면 누가 널 좋아하겠냐, 그렇지? 물으려던 제 말을 쏙 가로채고 씩 웃어 보이며 고개를 들이미는 꼬락서니가 퍽 재수가 없어서. 신타로는 인상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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