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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신타카] 옆집 신혼부부 - 1 -




[BGM] 헤이즈블루 - 나무 











 "다녀왔어."

  신타로는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저 끝 부엌에서부터 현관 복도를 타고 흘러들어와 제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카레 냄새를 맡게 된 지도 대략 2년 정도가 지났다. 한쪽 팔에는 정장 마이를 들고, 어깨에 멘 검은색의 가죽 재질의 서류가방을 떨어지지 않게 꼭 잡은 청년은 신발을 벗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었다. 언제나처럼 타카네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카레를 들여다보던 것을 멈추고 그대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어서 와. 작게 한마디를 던졌다. 무뚝뚝한 주제에 귀는 무지하게 밝아서, 그새 그걸 들은 모양인지 어어, 하고 대답하는 신타로의 목소리가 들리자 타카네는 옅게 웃었다. 하여간 귀 하나는 무지하게 밝아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카레가 담긴 냄비를 데우고 있던 가스를 내리고, 찬장에서 그릇 두 개를 꺼낸 여성은 밥통을 열고 하얀 쌀밥을 꾹꾹 그릇에 눌러 담은 뒤 국자를 찾았다. 

  오늘은 카레? 어느새 와이셔츠를 벗고 검은색 티셔츠로 갈아입은 청년이 식탁 근처를 기웃거렸다. 마트에 갔는데 세일하길래. 켁, 드디어 살림이 늘기 시작한 모양이네. 원래부터 살림이라면 자신 있었거든. 뚫린 입이라고 막 뱉어내면 나중에 천벌받을걸, 너. 시끄러. 의미없는 대화를 반복하며 살림을 뒤져 국자를 찾아낸 타카네는 카레를 떠서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것을 팔을 쭉 뻗어 신타로에게 건네니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신타로는 이내 그릇을 받아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반찬 안에 있지? 어어, 냉장고 열어보면 있을 거야. 타카네의 말에 청년은 천천히 때 묻지 않은 새하얀 냉장고로 다가가 반찬 몇 개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신타로가 반찬을 꺼내 식탁 위에 나열해놓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카레를 뜨는 것까지 끝마친 타카네는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카레가 뚝뚝 흐르는 국자는 냄비에 넣어놓고, 혹 식을까 뚜껑을 닫아놓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가스 밸브까지 완전히 잠근 후에야 몸을 돌려 의자를 빼 앉았다. 별안간 기다렸다는 듯 신타로 또한 타카네의 맞은 편에 의자를 빼 앉았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 상태에서 둘은 잘 먹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내뱉은 후 옆에 놓여있던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식사를 시작했다. 

  의외로 둘 사이에 흐르던 정적은 식사할 때 만큼은 유지되지 않았다. 오늘 회사는 어땠는데? 아, 뭐…. 어땠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귀찮아. 너, 진짜 사회생활 잘하고 있는 거 맞아? 켁, 잘하고 있거든. 적어도 누구보다는. 말에는 가시가 서려 있는 주제에 얼굴에는 미미하게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며 중간중간 빙그레 눈을 휘어 웃어 보이는 타카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신타로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노릇이지만,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와 그녀 사이에는 외로움을 채워주는 죄책감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 타카네는 하루카와 결혼을 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나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서로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결국 하루카 선배가 청혼하고, 타카네가 그것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당시 아야노와 사귀고 있던 신타로에게 우리 결혼하기로 했어! 하루카가 배시시 웃어 보이며 그런 말을 했을 때 신타로는 꽤 놀란 채였다. 둘이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에이 설마, 라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먼저 청혼한 것이 타카네가 아닌 하루카라는 점에서 꽤 놀란 채였지. 그도 당연할 것이, 꽤 소심했으니까. 선배. 하루카와 타카네는 행복했다. 그저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음, 그래. 진심으로 말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하루카는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고, 타카네는 그 당시 병에 대해서 많은 의학 지식을 갖추고 싶어 했던 터라 간호 학원에 꾸준히 다니고 있는 듯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둘은 행복했고, 그들을 포함한 우리는 모두 그들이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이 있다면, 신이라는 단어는 아마 악마를 두려워한 인간들이 그들을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신타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하루카의 얼굴은 여전했지만, 타카네가 잡을 수 있는 손은 없어진 채였다. 타카네가 끌어안을 수 있는 몸은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 채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검은 띠를 두른 하루카의 사진 앞에서 타카네는 상복을 입은 채 다른 이들을 맞았다. 생각건대, 그녀는 꽤 강인한 사람이었다. 물론 언행은 곱다고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하루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커다랗다는 걸 신타로는 알고 있었다. 하루카가 죽었다. 만약 자신이 타카네였다면? 죽은 사람이 아야노였다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생각만해도 자살총둥이 끓어오르며 진저리가 나는 일이라고. 어찌저찌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땅을 칠만도 한데, 누군가를 붙잡고 원망할 만도 한데. 꿋꿋하게 웃으며 다른 사람을 맞는 타카네를 보며 신타로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하루카는 전날 밤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켰다고 했다. 며칠 전, 둘이 병원에 갔을 때 의사의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계기로 반지도 맞췄다고 했고. 그 말대로 타카네의 왼손 약지에는 은으로 도금이 되어 정 가운데에 푸른색의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날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키지 않아서, 잠시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구경 다니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밤새 이야기하며 둘은 꼭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발작이 어젯밤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타카네는 먼저 근처 병원과 소방서에 신고한 뒤 할 수 있는대로 응급처치를 했지만, 그만 병원에서 찾아오기 전 하루카의 목숨이 끊겼다. ‥신타로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두통이 몰려와 강하게 신타로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는 몰려오는 두통을 물리치기 위해 고개를 한 번 저었다. 그리고 별안간 손을 뻗어 거의 울음을 터뜨린 아야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야노, 잘 달래줘."

  멍청이냐. 그 누구보다도 아플 사람은 나나 이 녀석이 아니라 너잖아. 그런 말이 목구멍을 넘어왔지만 이미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구태여 손으로 후비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저 꿀꺽, 숨과 함께 그것을 삼켰다. 그래.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여서. 신타로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타카네가 집에 돌아오게 된 것은 날이 꽤 어두워졌을 때였다. 하루카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집. 그녀는 갈색의 체크무늬가 새겨진 철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가방 안으로 손을 넣어 반지가 달랑거리는 열쇠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문고리에 꽂아넣은 뒤 느긋이 문고리를 잡고 열쇠를 돌리자 별안간 달칵하는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열쇠를 빼내어 꼭 손에 쥔 뒤 문을 열고 안으로 향했다. 집안은 평소와 달리 아늑하다, 따뜻하다는 수식어보다는 쓸쓸하다, 차갑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축에 속했다. 하루카가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애초에 그가 살아있었다면 겨우겨우 얻어낸 휴일 밖에 나가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테지만. 타카네는 가방끈을 꾹 눌러 잡았다. 물끄러미, 아무 무늬 없는 하얀색 운동화 하나와, 남색 운동화 하나, 나란히 놓여진 두 켤레의 신발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평소처럼, 익숙하게 가자. 그녀는 검은색 정장 구두를 벗어 잘 놓아둔 뒤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침실이었다. 한 명이 눕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침대, 전날 밤의 상황을 다시 보여주듯 침대는 잔뜩 흐트러져 있었고, 이불은 반쯤 침대 위에 걸쳐진 채로 바닥과 맞닿아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한쪽에 놓인 옷걸이에 걸어놓고 이불을 잡아 끌어올려 침대 위에 제대로 펼쳐두었다. 방 안에 흐르는 공기가 유난히 찼다. 침대 바로 옆에 놓인 큰 창문으로부터 달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간신히 그 빛에 의지한 채로, 타카네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천천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하루카가 마지막으로 남긴 온기가 몸에 닿아오지 않을까, 그런 것을 기대했지만, 그녀에 몸에 닿아오는 것은 오직 제 몸의 온기뿐이었다. 하루카. 하루카. 하루카. 질릴 정도로 사랑스러운 이름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부짖고 싶었다. 하얀색의 얇은 이불을 꼭 끌어안은 채로 여성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하루카. 고심 끝에 내뱉은 이름이 방 안을 울렸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따뜻한 게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은 따뜻함에 게슴츠레 눈을 뜬 여성은 손을 더듬거렸다. 하루카?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벌써 아침을 준비하러 갔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부엌에서부터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는 것을 보아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럼 어딜 간 거람. 타카네는 작게 투덜대며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몸에 닿아오자 타카네는 몸을 흠칫 떨었다. 잘 다듬어진 매끄러운 나무로 된 바닥을 밟으며 그녀는 거실로 나가 하루카를 찾았다. 하루카, 여기 있어? 부엌으로 들어가 고개를 들이밀어 보지만, 아무도 없다. 화장실에 있나. 그녀는 천천히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어디서 쓰러져 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대충 주위를 살피며 걷고 있으니 바로 옆에 있던 전신 거울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제 모습이 보였다. ‥‥아. 일순간 타카네는 작게 탄식했다. 하루카, 이제 없지. 어째서 이리도 당연하게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째서 이리도 당연하게…….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큰, 상자 하나를 찾자. 그리 결심한 여성은 몸을 돌려 움직였다. 

  타카네는 집안 곳곳을 다니며 하루카가 쓰던 물건들을 찾아 침대 위에 올려 두었다. 그가 입었던 옷들, 그가 썼던 스케치북, 그가 썼던 연필, 그가 썼던 노트북, 그가 썼던……. 언제 이렇게 물건이 많아졌더라. 타카네는 옅게 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물건을 담을 상자를 찾고 나니 저녁이라고 이야기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들어오는 노을빛을 그대로 맞으며, 그녀는 침대 위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씩 상자에 담았다. 뚝, 뚝, 뚝. ‥천천히 젖어가는 상자를 바라보며 타카네는 입술을 꾹 깨물고 소매로 눈가를 대충 닦아냈지만 상자에 물건을 담는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