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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기타

[클로저스/이세하] 유 언

 

 

 

 





암흑의 광휘 합작 이세하 파트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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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만나게 줄은 몰랐네요.”

  흐릿하게 흔들리는 사람의 인영을 차디찬 손바닥으로 덮어버리며 그리 말한 소년이 있었다. 답지 않은 느긋하고 잔잔한 목소리에 점차 차갑게 식어가는 몸뚱어리에 정신을 간신히 묶어놓고 유지하며 바쁘게 숨을 들이마신다. 손가락 끝에 눌어붙은 핏방울, 코끝을 맴돌다 결국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정신없이 후각을 자극하며 파고드는 비릿한 냄새, 머리에서는 여전히 삐익, 삐익,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났다. 언젠가 평화로웠을 때에, 이러다 죽겠다며 처음 롤러코스터를 접했을 때처럼 아찔하게 정신이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가느다란 실처럼 늘어지고 있었다. 죽을 같다, 그런 기분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진득하게 온몸을 타고내리는 와중에도 소년은 그저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의 손을 맞잡는 것을 쑥스러워했을지언정 결코 다른 이들을 뿌리치려 하지 않았던 따뜻한 손은 과연 어디로 갔나. 끝까지 강한 모습으로 쓰러지지 않고 있으리라 다짐했던 지난 시간의 제가 무색해질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콧잔등과 시큰거리기 시작하는 눈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말도 하지 못하고 코를 훌쩍이며, 겹겹이 쌓여가는 눈물을 애써 밀어 넣으며 색색, 쇳소리 가득한 숨을 뱉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눈물로 묻는다. 너는 무엇을 위하여 등을 돌렸나. 무엇을 위하여 상냥함을 버렸으며, 무엇을 위해서 사랑하는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어야만 했나. 물음은 꾸준히 쌓이기만 할 뿐 내뱉어지지 않으며 필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물음에 짓눌려 결국 원망만을 작은 손에 쥐고 그대로 숨을 멈출 것이다. 시야를 가린 눈물이 끝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천천히 뺨을 타고 흘러 머리칼을 적셨다.

 “도대체……….”

 “어째서냐고요?”

  용케 갈라진 목소리를 알아들은 소년은 앞에 놓인 구의 시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인데. 손바닥에 묻어난 것이 잊을 없는 불쾌함을 유발했다. 천천히 손을 거두며 살살 손사래를 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냐고 물어도 그쪽이 바라는 대답은 들을 없을 텐데, 어째서 물어보는 거예요?

  비꼬는 없이, 그야말로 순수한 호기심으로부터 나오는 질문이었다.

  침묵. 공간을 울리는 소리라고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불편한 정적. 하, 그는 숨을 내뱉는다. 뿌연 것이 벌어진 입술로부터 흘러나와 눈앞에 아른거리다 공기 중으로 녹아들어 사라져 간다. 눈길로 쫓을 것이 없음을 알고 있는데, 쫓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상한 기분이 것만 같아 그는 끊임없이 눈을 굴리다 저가 내뱉었던 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유언, 그런 것도 괜찮을 터였다.

 

  그는 매일 꿈을 꿨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몸을 웅크린 손에 눌어붙은 핏덩이들을 담담히 떼어내는 자신, 한구석으로 이건 꿈이다, 하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꿈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자신. 강렬하게 거죽을 찢고 몸을 찌르는 분위기, 그리고 코를 찌르는 선명한 악취에 세하는 눈을 찡그리며 하순을 깨물고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신경 쓰다가도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로 담담하게 한참 손에 묻어난 핏덩이를 손톱으로 긁어내 떨어뜨리다 보면 발밑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 줄을 알면서, 그것을 발견한 뒤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지 알면서도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를 수밖에 없는 인형과도 같이 반강제적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난잡하게 엉켜있는 얇은 실과 그것들 사이로 볼록 튀어나와 천장에 박혀있는 썩어빠진 판자들, 아마도 코를 찌르는 악취의 근원일 늘어진 시체 구가 있었다. 소년은 금방 시체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움찔거렸다.

  아. 빛이 흐릿한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꾸준히 담고 있는 몸뚱어리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일순간 흐릿해지는 시야에 몸을 휘청거리다 결국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벽에 등허리를 처박고 힘없이 고개만을 들어 시퍼렇게 물든 입술을 뻐끔대기 시작하는 저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 힘을 받아들이면 더는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어, 응?

  그저 느긋이 눈을 끔뻑거린다. 위화감을 느낄 찰나조차 없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편안함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일순간 정전이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서 그는 숨을 삼켰다. 끝을 가늠할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사람의 손길, 그러니까 줌의 온기만이 급급한 상황에서 별안간 끝, 지평선 너머로부터 새어들기 시작한 푸른 줄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손을 뻗으며,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이 바로 앞에서 번쩍거렸다. 빛에 익숙해지자마자 뵈었던 것은 푸른색 화면 위로 게임 오버라고 반듯하게 하얀 글씨를 띄운 화면이었다. 이불을 걷어낸 딱딱한 매트리스 위에서 몸을 누이고 있던 세하는 발끝으로 싸하게 도는 한기에 몸을 떤다. 누군가 머리 안으로 욱여넣은 것인지, 불현듯 스쳐 지나갈 생각일 뿐인지 확실하게 길은 없었으나 때에 머리를 장악한 그것은 쉽게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무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벌레처럼, 천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다가 머리통에 들어있는 조그마한 덩어리를 완전히 집어삼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길로 훑어진 것만 같은 기분, 주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일제히 눈동자를 굴려 자신을 천천히 훑어 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싸하게 발끝에 머물던 한기가 몸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온몸을 부둥켜안은 기분 나쁜 감촉에 세하는 몸서리를 쳤다. 재시작되어 껌뻑껌뻑 붉은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게임기의 화면마저도 눈에 뵈지 않게 되어서, 그는 게임기를 들고 있던 팔을 뻗어 침대 밑으로 늘어뜨린 그저 눈을 끔뻑거리다 게임기를 떨어뜨렸다.

  계속해서 머리를 울리는 이명에 몸서리를 치고, 발밑으로 널브러져 있던 포근한 이불을 끌어올려 덮으며 세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힘을 받아들이면, 힘을 받아들이면. 어지럽게 머리를 헤집는 말소리에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그는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색색 숨을 내쉬고 있었다.

 

 “참, 그때는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하지만 진짜 두려웠거든요.”

  손에 쥐어진 게임기를 하늘로 던져 올렸다 다시 잡아 쥐기를 반복하는 손이 위로, 아래로 여유롭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무서웠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내는 모습은 불과 며칠 전의 그와 다를 것이 없었다. 계속되는 말소리, 흔들리는 시야, 허리춤으로부터 울컥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핏물에 정신이 없었으나 당신은 여전히 듣고 있었다. 소년은 손바닥에 안착한 게임기를 손으로 잡았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던져 놓는다. 누구보다도 소중히 했던 물건일 터였다, 이전에는. 소년은 그저 물끄러미 바닥에 미끄러진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린다.

 “저깟 게임 같은 아니라,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녀석들이, 그러니까. 이슬비도, 아저씨도 그렇고……. 누가 되었든, 죽어갈 때의 느낌을 알아요? 아니, 그것보다…. 죽을 위기에 닥쳤는데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을 때는요? 지금 느끼고 있나, 저번에 느꼈거든요.”

  술술 내뱉는 것이 들리는 살벌한 단어들과는 달랐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 그리고 혼자서 헤쳐 나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누구도 손을 뻗어주지 않았을 때에 밀려오던 두려움에 관한 것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때 날을, 어찌 다시 떠올리지 않을 있을까.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듯 소년의 눈동자 속에서 발견한 날의 일은 다시금 진저리를 치게 했다.

 

  물론 세하는 언제나 소문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어미의 명성뿐이 아니라 그가 가진 모든 것에서. 일에 관해서는 특히나 그랬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을 유정은 세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너희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이제까지 해온 일들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일이 거라고. 든든한 어른들과, 실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것이라고.  지역은 유난히 피바람이 거셌다. 혹시 모르지, 차원종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무언가가 거기 파묻혀 있을지도. 누군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묘한 신뢰가 생길 정도로 순식간에 황폐해진 곳. 검은 양은 그곳으로 것을 명령받았다. 그들은 어렸다. 그러니까, 검은 양이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 각자 하나씩 무기를 들고 ‘차원종’이라 불리는 정체 모를 것들의 살갗을 베어내고 찢으며 손에 피를 묻히던 이들은 한창 거리를 거닐어야 평범한 소년과 소녀들이었다.

 “그래도, 저희가 가면…. 사람들을 지킬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 놈들이 팔을 걷어붙인 유일한 이유였다. 저보다 한창 어린아이의 말에 이세하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파도처럼 분노가 밀려와 몸이 떨리는 것을 애써 참아내고 수긍한다. 지원이 오지 않는 이유, 순수하게 모든 상황을 바라볼 없는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깨닫고 이해한 후였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이들의 별것 아닌 다툼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그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을 삼켜내며,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회해요.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고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년의 얼굴 위로 덕지덕지 밴드가 붙어있었다. 걱정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몰려들었으나 그 꼴만큼 더욱 안쓰러웠던 것은 그가 온종일 하는 일이 그저 의자에 가만히 앉아 멍한 얼굴로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건물 안이 조용했다, 그래도 썩 시끌벅적한 곳이었는데. 그 누구라도 지금의 이곳에 찾아오게 된다면, 더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시뻘겋게 오른 눈으로 몸을 돌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예전엔 좀, 꽉 찬 느낌이었는데.

  싸늘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숨을 쉴 수 없도록 짓누르는 듯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간단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전멸, 굳이 설명하자면 그 단어 외로는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혼자 들어갔어야 했는데, 차라리 혼자…….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몸을 던진 이슬비가 그대로 튕겨 땅을 구르는 모습에 세하는 휘두르던 것을 그만두고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쾅, 쾅, 쾅! 미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폭탄이 땅으로 떨어짐과 함께 곳곳에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굉음이 들렸다. 소리에 크게 부풀어 오르던 고막이 터지며 시야가 깜깜해지고, 그대로 뒤로 휘청대며 눈을 감는다면 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슬슬 그런 생각조차 들고 있었으나 그는 고개를 털어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실수하는 순간 모두 끝장이다, 마음속에 확실히 새겨 넣으며 고개를 돌리고 제 앞에 선 거대한 돌덩이를 바라보며 혀를 찬다. 정신 똑바로 차려! 과연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 다시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그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이대로라면 끄떡도 없었다, 지키기는커녕 차갑게 식고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될 것이 눈앞에 선했다. 숨을 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고 비가 내리듯 쏟아지는 공격에 그는 숨을 삼킨다. 그들에게 내려진 선택권은 단 두 가지, 여기서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냐, 후퇴하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 묻는다면 세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후퇴, 이미 피를 철철 흘리며 땅에 주저앉은 소녀 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간신히 숨만을 고르고 있는 소년.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도망쳐야만 했으나, 뒤로 돌아 달리는 순간 그 뒤에 들이닥칠 후폭풍 또한 세하는 바로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공격당할 것이다, 이대로 밀고 들어가 아무 힘없는 사람들이 짓밟힐 것이다. 절실함, 원망은 모두 날아가고 소년의 마음속으로 지금 이 순간 꽉 들어찬 것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아닌 타인의 목숨을 위함이었다. 본인은 여기서 죽어도 괜찮으니, 제발 다른 이들의 목숨만큼은 구해달라고 간절히 빌고 있었다. 허나 몇 분, 몇십 분, 몇 시간, 지원이 도착할 것이라고 했던 시간은 진즉 지난 후로, 소년은 알고 있었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전 큰 걸 바란 적 없어요. …미움받지 않게 해달라고 빌어본 적이 없다고요. 서운하긴 했죠, 아, 근데 그건 뭐….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네? 제가 바란 건 딱 하나뿐이었어요. 살고 싶다, 도 아니고, 살려달라고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요. 제가 그렇게 큰 걸 바랐어요?”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말이 저도 우스웠는지, 헛웃음을 뱉어내며 손사래를 치던 소년은 고개를 젓다 숙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기야, 다른 사람들한테 언제 내가 바랐던 게 큰 게 아니었던 적이나 있나요.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그토록 미움 받고, 그토록 질책당해야만 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소중한 녀석들까지 잃어버렸고요. 이런 나한테, 변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한 이야기 아닌가요?”

  부정도, 비난도 할 수 없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 시체는 숨을 삼킨다. 울컥울컥 피를 뿜고 있던 몸뚱이가 더는 뱉어낼 것도 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숨을 참은 채 갓 잠긴 수도꼭지처럼 찢긴 살점의 끝으로 물방울을 달고 있었다. 완전히 숨을 거두고 싸늘하게 식은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소년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대충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더는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은 없지만요.”

  더는.

  이게 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유언이에요. 지키지 못한 것들을 손에 하나씩 담고 꼬박꼬박 세면서 세하는 무거운 몸을 질질 끌며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한숨 섞인 소리가 여전히 돌아가는 기계의 소리에 묻힌 채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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