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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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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님/쿠로마리] 애정의 되풀이 불쌍한 나에게도 단 한 번,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가 앉아있는 곳은 붉은 방 같았다. 흡사, 붉은 방. 물감 따위는 아니고,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고인 피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펴 바른 듯한 느낌이 가득하게 피로 잔뜩 무언가 그려진 그런 방.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자신의 탓으로 그 모든 것을 돌려가며 생각해봐도 남는 것은 자책뿐이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분홍색의 두려움이 잔뜩 서린 눈물 걸린 둥그런 눈을 천천히 굴리기 시작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내뱉은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지자 그는 전혀 무미건조한 노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히스님/하루타카] 기억 어디선가 맡아본 적 있는 비릿한 향. 예의상으로라도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냄새가 하루카의 코를 비집고 들어와 그의 후각을 쉼 없이 자극한다. 이유 모를 두려움을 애써 저의 가슴속에 꾹 밀어 넣은 채, 소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분명 저는 눈을 떴다고 생각했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저의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저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공간이 도저히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둠으로 꽉꽉 메워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소년은 이상함을 느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저의 손에 끈적하게 묻어난 것을 바라보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의 손에 묻은 액체만은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곧 그것이 무엇..
[인삼님/드림] 너와 함께. [BGM] 버벌진트 - 시작이 좋아 소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이의 얼굴은 그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몇 번이고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를 외치며. 소녀는 몇 번이고 사랑스러움을 표했다. 무어라고 말해도 나는 당신이 참 좋아요. 소녀의 말에 남성은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거린다. 응, 맞아요! 소녀는 해맑게 웃었다. 해맑게 웃어 보이며, 정말로 좋아해요. 그리 이야기한다. 그래, 나도 좋아해. 상냥한 남성의 말에 그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배시시 웃는다. 자, 그럼 쪽! 곧 저의 입술을 툭툭 두드려 보이며 고개를 까딱이는 것이 퍽 귀여웠던지, 다이무스는 하하, 그렇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래, 해주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남성의 말에 소녀는..
[히스님/하루타카] Good Morning ~ [BGM] 버벌진트(Feat. 권정열) - 굿모닝 코코노세 하루카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아주, 정말로 깊은 잠이었기 때문에 꿈 같은 건 꾸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밤이었다고 생각했다. 저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천천히 잠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소년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진동하는 알람시계를 저의 옆에 누워있는 소녀가 깰세라 낚아채 버튼을 눌렀다. 끄으으~ 대략 7시간 정도를 누워있었던 저의 몸이 뻐근함을 토로하며 괜스레 머리 위로 쭉 팔을 뻗고 온몸에 힘을 준다. 그렇게 한참을 기지개로 시간을 보낸 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밝은 햇빛이 침대 옆의 창문으로부터 서서히 흘러들어와 자신과 소녀의 몸을 적셨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 그리 생각하며 하루..
[단비담비님/세토카노] 붕괴 ※ 2p세토/ 카노멘붕 주의 ※ [BGM] 소유, 매드클라운 - 착해 빠졌어 멍청하네. 카노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목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았던 그런 목소리. 카노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야 한다. 고개를 들어야만 한다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질책하며 그는 고개를 든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바로 뜨고 자신의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역시나, 고개를 까딱거리며 미친 듯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너 때문에 죽어버렸어. 누나가. 누나가! 저의 앞에 있는 이의 말이 모두 옳다. 그래,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결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저 자신이 지독하게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카노는 눈..
[애꽃님/쿠로신] Good-bye Summer [BGM] f(x) (Feat.디오) - Good bye Summer "계속 그거 읽고 있을 생각이지?" 신타로는 쿠로하의 목소리에 그저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 그럴 셈이야. 툭 던진 대답이 통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곧 입술을 삐죽이며 팔을 뻗어 어깨동무를 해오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허나 여기서 한소리 한다면 뒷통수에 고통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올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읽던 책을 마저 읽기로 했다. 한줄 한줄 모든 문구를 읽어나가며, 머리에 찍어내듯 넣어놓고 한 장, 한 장 넘기자 자신의 방 안에는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다. 정적에는 편안한 정적이라는 것과 영 불편한 정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신타로는 영 불..
[강정님/코노신] 사랑스러운 무지 BGM]스타쉽 플래닛(Starship Planet) - 눈 사탕 "신타로, 키스." "예?" 키사라기 신타로는 예상치 못한 코노하의 말에 몸을 크게 움찔였다.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물으며 허, 하고 숨을 터뜨린다. 그리고 곧, 무슨 말인지.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것을 깨닫고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손을 휘적거릴 뿐이다. 너, 너너, 너너,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워온 거야?! 일반 남성의 경우라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리도 없었을 테지만, 아아, 어쨌든. 코노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지구가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음을 신타로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팔을 뻗어 가까이 다가온 코노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몸을 젖혔다. 저, 저리 잠깐 가 봐! 청년이 그를 밀어..
[렛카님/세토신] 밤의 공백 [BGM] 라디 - as Always "참, 신타로 씨도! 분명 저녁때 커피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고 말씀 드렸잖슴까." 세토 코우스케는 입을 삐죽거리며 커피잔을 들고 있는 키사라기 신타로에게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신타로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한참을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그는 곧 손을 뻗어 신타로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낚아채 옆에 있던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신타로는 평소와는 달리 너무 이르게 돌아온 저의 애인에게 아무 말도 못한 채 한참을 쩔쩔매며 양 손을 흔들거렸다. 아니, 이건 오해야. 범행현장을 발견했슴다, 오해는요! 신타로의 되도 않는 발언에 세토는 푹, 한숨을 쉰다. 그리고 곧,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신타로의 손을 잡은 채 그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범행현장까지야‥‥. 납득치 못하겠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