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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Winter ~ 여는 이야기 ~ [카게로우 프로젝트]

 






[BGM] 서머 타임 레코드(Guitars.cove) - 오사무라이상 

[ 원곡: 진(자연의 적P) ] 











지겹도록 반복되던 여름이 지났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싸늘한 바람을 타고 온 가을은 사뿐사뿐 자신의 손바닥 위에 주저앉아 숨을 돌리다 바스락 으스러져 흩어졌다. 가을이 모습을 감춘 세상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겨울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싸늘한 바람과 새하얀 세상을 몰고 온 그 매서운 계절은 자신들이 반복했던 그 때의 그 시간과는 상당히 달랐다. 초반 쌀쌀하던 날씨는 점차 창문에 얼음이 서릴 정도로 싸늘해져 있었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이 매서운 추위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을 은은하게 비추는 빛은 오직 컴퓨터의 모니터와 자신의 발아래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는 작은 적외선 난로 하나뿐이었다. 신타로는 의자 위에 앉아 턱을 괴곤 가만히 모니터를 쏘아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작곡에 열을 내던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이 쓰고 있던 곡을 날릴 뻔했다.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히던 그 전자 소녀는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곡을 날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며칠 전부터 저의 방의 컴퓨터가 고장 났다는 것을 이야기 하며 신타로의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여동생 키사라기 모모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어떤 사이트에 잘못 들어갔거나, 무언가 바이러스를 첨부한 화상 같은 것을 다운받았거나. 그런 모종의 이유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몇 번이고 자신의 방에 들락거리며 컴퓨터를 사용하던 모모를 보고도 그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방치했던 것이 자신의 행복한 히키코모리 라이프에 있어서 평생 걷혀지지 않을 오점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젠장, 다시는 손 못 대게 해버릴까. 툴툴거리며 Ctrl+Shift+S를 누른 후 제목을 적는 곳에 “Summer time record"라고 박아낸 그는 신경질적으로 엔터를 누르며 속으로 몇 번이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제발 저장만 되라! 그 결과 잠시 버벅이던 컴퓨터는 이내 저장 되었습니다 ^^하는 상냥한 안내 멘트를 띄웠다. 혹시나 하는 의심에 작곡 프로그램의 창을 내려 바탕화면에 자리한 아이콘을 확인까지 하고 나서야 신타로는 안도의 뜻이 담긴 깊은 한숨을 쉬었다.

“Summer Time record", 명칭 섬타레는 신타로 본인이 그 여름날에 겪어왔던 일들을 적어낸 노래였다. 나름대로, 그래, 나름대로.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모두의이야기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벌써 작업을 시작한지 몇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장차 동화 1위를 차지할 노래의 작업 상황에는 전혀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신타로는 아- 짧게 탄식하며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혔다. 흐릿하게 보이는 전등과 벽을 뒤로 한 채로 그는 눈을 감았다. 이래서 몇 년이나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웃음 섞인 한숨을 쉬며 일어선 그는 컴퓨터와 난로의 전원을 내리고 옷장에 잘 정리되어있던 붉은색의 져지와 목도리를 들었다. 겨울인데 이 정도도 걸쳐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겠지. 신타로는 붉은색 져지를 입고 그 위로 목도리를 둘렀다.


, 가끔은 시끄러운 것도 나쁘지 않겠지.”

퉁명스런 말투와는 달리 그렇게 이야기 하는 입은 분명히 웃음을 띄고 있었다.

 

 

*       *       *

 

 

에노모토 타카네는 언제나와 같이 코코노세 하루카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년 남짓 학교를 쉬어버린 탓인가, 타카네는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데 고난을 겪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쉬었다라는 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데에 문제가 아닐까? 머리를 감싸고 끙끙대며 자신의 앞에 놓인 문제집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타카네는 곧 자신의 앞으로 놓여진 흰 색의 머그컵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타카네의 눈길이 닿은 곳에는 정리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곤 응? 하며 빙그레 웃어 보이는 키가 큰 청년이 서 있었다. 하루카는 테이블 앞에 있던 의자를 끌어 앉았다. 자신의 앞에 놓인 처음 건내 받았을 때와 그대로인 순백의 문제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하루카의 눈길에 타카네는 언제나와 같이 잔뜩 짜증을 내곤 책상 위로 쿵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어떻게라도 해보겠답시고 밤샘을 반복하는 타카네와 다르게 하루카는 언제나 머리가 좋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 몇 달 되지도 않아 꽤 이름이 알려진 미술 대학교에 원서를 넣고 시험을 보고 그게 되겠냐는 타카네의 핀잔에 마치 제는 된다는 듯 자랑스럽게 입학 통지서를 가져왔을 정도니까.

하아, 타카네는 깊게 한숨을 뱉어냈다. 좀 더 빨리 하루카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 일주일에 몇 번이며 횟수를 정해 하루카와 함께 공부까지 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타나는 성과가 전혀 없을 때마다 타카네는 공부라는 것은 역시 얼마나 쉬었냐, 얼마나 노력하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의 문제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 자신의 속도 모르고 태평스럽게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파르페를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고 있는 하루카가 괜히 미워져 타카네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거기 응답이라도 하듯 아! 하고 자신이 먹고 있던 파르페를 스푼 가득히 담아 내미는 하루카의 모습에 금방 풀리게 됐지만. 타카네는 힘 빠진 얼굴로 자신의 앞에 아른거리는 파르페를 덥석 받아먹었다. 달다. 먹을 것을 삼키기 전 혀 끝에서부터 목 끝으로 퍼지는 그 음식 특유의 맛은 언제나 특별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지게 된 지도 벌써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과연 그 모든 것들을 끔찍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앞에 있는 이 녀석도,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그 모든 것들을 그리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쳤을 때엔 모든 것들이 끝났던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었던 얼굴들이 떠올라 그리워졌다.

타카네는 손을 뻗어 온기가 가득한 컵을 감쌌다. 하루카, 이름을 부르자 응?하고 해맑게 되물어오는 목소리가 근질거려서 타카네는 답지 않게 얼굴에 힘을 풀곤 빙그레 웃음 지었다. 만나러 가자. 단 한 마디를 뱉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카는 잠시 음~하고 짧게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평소처럼 고개를 강하게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어쩌면 이 녀석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려나. 그 여름날의 공기가 카페 실내의 히터로부터 불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카노 슈우야는 나른했다. 극히 개인적으로 카노에게 이 겨울날의 햇빛이라는 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초콜릿과도 같은 것이었다. 바람은 칼날같이 시린 주제에 밝은 햇빛은 그것을 충분히 융화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서 창문의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부터 떨어질 수 없게끔 만든다. 그런 이유로 카노는 나른하게 창가 쪽에 놓인 쇼파 위에서 잡지를 읽고 있었다. 자신의 배 위에 깔린 극세사 재질의 담요는 보들보들 한 것이 꼭 짐승 한 마리가 자신의 배 위에 올라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동물의 털보다 더한 따뜻함일지도 모른다. 그런 지루한 생각들을 하며 쩍 입을 벌려 하품을 하는 카노의 얼굴 위로 거뭇거뭇한 음영이 생겼다. 그는 이 그림자의 주인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림자의 끝에 길게 늘어진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무슨 일이야, 아야노 누나? ”

카노는 들고 있던 잡지를 옆에 놓여있던 테이블에 떨어트리듯 던져놓곤 나른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타테야마 아야노는 모두의 누나를 자칭하는 어딘가 이상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상냥하기 그지없는 소녀였다. 때때로 자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배려 깊다는 것은 그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이었다. 자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던 탓이었을까, 당연히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야노는 자신이 이제까지 보고 있었던 잡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뭘까, 카노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야노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보고 있던 잡지에 관심이라도 있는 거야? ”

카노의 물음에 아야노는 가만히 잡지를 응시하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당황한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얼굴로 카노와 눈을 맞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어나 문제가 있는 듯 눈길을 피하며 뺨을 긁적거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혹시 뭔가 하고 싶은 비밀 이야기나 고민 같은 것이 있는 걸까. 아야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노는 곧 쭈뼛거리며 간신히 뱉어낸 아야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꽤나 진지해 보이는 표정으로도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 ──혹시 슈야, 읽고 있는 거 야, , 야한 잡지니?! ”

제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양 세네 번 말을 더듬던 아야노는 이내 빽 소리를 지르곤 제 말에 자기가 더 놀란 양 입가를 손바닥으로 가리며 아, 아니 저기……하고 변명을 했다. 꽤 긴장감 있게 아야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던 카노로서는 얼마나 맥이 빠지던 말이던가. ? 아야노의 말에 되묻듯 소리를 내뱉은 카노는 곧 푸흡, 하고 작게 웃음을 내뱉었다. 이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가. 이 얼마나 평범하고, 이 얼마나. 모든 것이 끝난 지 벌써 몇 달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야노가 매번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긴장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혹시나하는 것이 불현 듯 자신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오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날 들었던 그 모든 것들은 어쩌면 카노의 뇌리에 트라우마라는 것으로 남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푸하하! ”

웃지 않고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배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웃다가 쇼파에 털썩 쓰러졌다. 잠시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웃으며 쇼파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자 잠깐 그 모습을 눈을 둥그렇게 뜬 채로 바라보던 아야노는 도리어 볼에 바람을 가득 채우고 얼굴을 붉게 익혔다. 슈야! 힘없이 아야노가 소리를 질렀다. 카노는 그로부터 몇 분을 더 데굴데굴 쇼파 위를 구르며 웃다가 몸을 일으키며 웃음을 참아냈다.

~ 정말, 미안해, 누나! 하지만 방금 그거 최고! ”

정말, 누나는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란 말이야. ”

카노가 왼손 엄지를 치켜세우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멈출 기미 없이 끅끅대자 아야노는 뚱한 얼굴로 카노를 바라보았다. 카노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어 보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슥 닦아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이야기를 들은 걸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세토와 키도. 아마도 둘 중 하나가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 했을 것이다. 아아, 하지만 둘도 여전히 귀엽네. 생각을 그 정도로 끝마쳤을 때 쯤 카노는 진정되지 않은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끅끅 거리며 아야노에게 물었다.


정말, 도대체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어온걸까? 나는 결백하다구. "

하지만 코우스케가 아르바이트를 나가면서 분명히 카노가 요즘 좋지 못한 걸 보고 있다고 했고 츠보미한테도 물어봤었는걸? 그랬더니 츠보미는 슈야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고 말해버려서―…

타락했다라니. 확실히 키도 다운 표현법이다. 하지만 나 말이야 그렇게 타락한 편은 아니라고. 이 자리에는 있지도 않은 소녀를 향해 투덜거리곤 이마를 짚었다. 세토도 너무하네! 도대체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해버린 걸까.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면 단 한 가지의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을 신경 써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 몇 달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녀석들이네. 카노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절대로 아니야. 누나. 그렇게 이야기 하자 아야노는 볼에 바람을 가득 채워 넣고는 입을 비쭉거렸다.

정말이야? ”

그럼~ 정말이지! ”

카노가 손을 휘휘 저으며 빙그레 웃어보이자 아야노는 잠시 잡지를 흘겨보다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타로한테 부탁할 테니까……. 혹시라도 그런 게 보고 싶어지면 꼭 상담해주기야? , 누나는 조금 곤란할지 모르니까! ”

그 쪽은 상담하기에는 너무 모범적이지 못한 어른이 아닐까? 그런 말이 목까지 차올랐음에도 가만히 삼켜버리곤 카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상관없겠지. 퍽 자신들을 신경 써주는 것이 이제는 누나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카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짧게 응, 응 하고 답했다.

그럼, 슈야. 누나는 점심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에헤헤,, 필요해지면 찾아줘야 해? ”

자신의 대답에 만족이라도 한 듯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천천히 거실로 걸어 나가는 아야노를 카노는 불러 세웠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역시 세토, 나 혼자는 억울하잖아? 잔뜩 당황해서 손을 휘휘 저어댈 제 친구의 얼굴이 선명히 눈앞에 아른거려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역시. 입 꼬리를 올려 부드럽게 웃은 채로 응? 하고 방안으로 고개만을 불쑥 내미는 아야노에게 카노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말은 해야할 것만 같아서 이야기 하고 있어. 라는 듯한 어투로 눈을 깜빡이며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세토가 자기 방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마자 잔뜩 빨개진 얼굴로 확 덮고 숨겨버리는 걸 봤어. 으음~ ,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아마도 야한 잡지 아닐까? ”

카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야노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아마도 이것으로 당분간은 즐거울 것이다. 문 밖으로 후다닥 사라지는 목도리의 끝을 바라보며 카노는 쇼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싸늘한 바람이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기분 좋은 추위네. 입 밖으로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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