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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키사라기 신타로] P T S D















  키사라기 신타로의 꿈 속에는 언제나 붉은 색의 머플러가 옅게 아른거렸다. 웃는 얼굴로 제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소녀는 자신의 팔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신타로, 그리운 목소리의 소녀가 불렀던 것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외며 손을 끌어당기는 모습은 퍽 괴기스러워 온 몸이 식은땀에 푹 젖을 정도였으나, 그녀에게서 흐르는 사랑스러움에 밀쳐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 키사라기 신타로 그의 상황이었다. 소녀는 저가 그토록 사랑했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붉은색 머플러, 그녀의 머리 오른편에서 빛을 내던 새빨간 머리핀, 검은 색의 세라복. 그리고 흩날리는 갈색의 머리카락.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마지막 날의 그녀가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그녀에게 보는 것만으로도 덥다며 가벼운 투정을 부렸겠지만 오늘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그리워했던 소녀의 기분을 거슬러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은 결코 할 수 없는 짓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으며, 다만 미친듯이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외며 저를 끌어당기고 있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어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역하게 가슴을 두드렸지만 그는 왠지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이 곳의 풍경을 한 번 살펴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녀가 있는, 그러니까 자신이 있어야만 하는 이 공간이 어디며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몇 번이고 그녀를 다시 만나러 올 수 있을테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렁이는 아지랑이와 콘크리트 바닥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리고 언젠가 본 적이 있던 그리웠던 해질녘의 하늘. 마땅히 이렇다 할 특징은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자신이 선 이 곳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지만, 또 하나 특징을 잡아보자면 그것은 주위에 자리한 그 모든 것들에게서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시야가 흐릿해지며 무언가에 얻어맞은 양 정신이 아찔해졌다. 애써 흐뜨러진 정신을 다잡은 그는 다시 자신이 사랑했던 소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이 곳을 대충이나마 추측하기 위하여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바라보았던 것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던 것만 같다. 그녀는 주위를 돌아본 자신을 배려라도 해준 것처럼 아까와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자신의 팔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혹여나 사라질까 걱정했던 자신이 창피해져 그는 고개를 숙였다. 

  잊어버린 모양이야, 그 때였을까. 웃음기가 섞인 다정한 목소리로 둥그런 눈을 밝게 휘어보인 소녀는 곧 자신의 손을 휙 놓아버리곤 뒤로 돌아 가벼운 깃털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겨가며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음의 배열, 혼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괴이한 음악, 마치 자신을 질책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나 그 괴이한 콧노래와는 다르게 그녀의 걸음은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면죄부를 주겠다는 뜻이라면 좋을텐데,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신타로는 아야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켜보기만을 몇 분, 어쩌면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살랑살랑 움직이는 걸음에 금방 그 속에 빠져들 것만 같아 순식간에 두려움이 일었다. 눈을 돌리려 했음에도 그 순간 모든 것이 환상처럼 녹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워 그는 꿈쩍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야노.”

  힘겹게 입을 뻐끔거려 내뱉은 것은 흡사 신음소리와도 같은 갈라져 볼품없는 목소리였다. 그는 제가 소녀 앞에서 흉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부끄러워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목이 메여오는 것이 느껴지더니만 아무래도 그 때문인 것만 같았다. 제 눈가를 떠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입 밖으로 아, 으으, 아……. 하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눈물을 닦아내려 갖가지 애를 쓰며 땅을 짚고 있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닦고, 닦아내고, 닦아내도 닦여지지 않는 것이 꼭 너의 죽음과도 같아서 그는 자신이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오열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가만히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이고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는 동안, 언제 다가온 것인지 아야노는 신타로의 얼굴 바로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신타로. 바로 자신의 앞에서 웃는 얼굴로 속삭여진 자신의 이름이 그리도 소름끼칠 수가 없었다. 곧, 웃는 얼굴의 그녀는 언제나처럼 ‘이해한다.’는 뜻을 담은 눈빛으로 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자리한 그 옅은 웃음에 손을 뻗어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잡아주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죽어버렸는지는 신타로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그 말투,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 그 모든 것을 깨고 나온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마냥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뒷통수가 얼얼해지며 오장욕부가 베베 꼬여왔다. 자신의 몸을 이루는 그 모든 것들이 식도를 타고 기어올라 베베꼬인 채 입 밖으로 내뱉어질 것만 같았다. 구토감이 기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우윽, 웨엑, 윽, 차마 아무것도 토하지 못한 채 소리만을 토해내며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그는 제 발 끝에서부터 천천히 몰려오기 시작하는 불쾌감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씻어내고 싶었다. 느끼지 못했던 것을 너의 죽음과 맞바꾼 것만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저 조차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섞여 끈적끈적 온 몸에 달라붙었다. 토해내고 싶었다, 너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을 것이다. 퍽 통쾌하다는 듯 웃으며, 이런 저를 비웃으며 입을 열었을 것이다. 

  소중한 것을 알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꺠닫지 못한 자신을 그렇게 비웃었을 것이다. 


 “다 너 때문이야.” 

  나열되지 않은 말을 읽는 것만 같았다. 구토감이 물밀듯이 밀려오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바닥에 손을 대고 고개를 쳐박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 믿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흐뜨러지며 익숙한 풍경으로 변해갔다. 학교 옥상, 네가 죽었던 그 곳, 우리가 함께 했던 곳. 아야노는 신타로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의 가슴팍을 두 팔로 밀쳐내기 시작하며 단 한 마디만을 반복했다. 죽어. 자신의 죽음을 소원하는 그 목소리는 눈물이 날 정도로 부드러웠다. 좀 더 듣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차디 찬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눈물로 가득 젖은 얼굴이 보였다. 

  분명히 울고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겠지.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이대로 맞이하는 죽음도 결코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가볍게 떠오르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쿵, 강한 충격과 함께 눈을 떴다. 저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 너는 그 날 이후로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인가 생각하며 멍하니 하늘을 본다. 단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축축히 젖은 머리칼을 얼굴에서 치우고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음에 안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저가 등을 맞대고 있는 이 침대에 자신의 온기로 가득차 있는 것이 왠지 억울해져서 막 마른 뺨의 위로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닦고, 닦아내고, 닦아내도 닦여지지 않는 눈물이 너의 죽음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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