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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하루신] 지는 꽃.










  저기, 신타로. 나는 있잖아. 신타로의 얼굴밖에 본 적이 없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 하루카의 얼굴은 흔들림없는 강처럼 한없이 잔잔했다. 조금, 방금 저가 무슨 말을 들었나. 제 귀를 의심했지만 이상할 게 없었다. 하루카가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한두 번인 일도 아니고. 소년은 들고 있던 잡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종이를 넘긴다. 사락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병실을 가득하게 울린다. 그래요, 선배. 그러시겠죠. 알고 있어요. 눈을 끔뻑이며 내뱉은 말에는 일말의 동정조차 없었다. 감정도 없고. 구깃구깃한 병원복을 차려입은 청년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눈을 굴리며 으음, 하고 작게 소리를 낸다. 링겔이 잔뜩 꽂힌 얇은 팔모가지를 들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리다 빙그레 웃어 보인다. 

  신타로는 여전히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뭐라고 해야할까. 조금 섭섭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겠지. 결국 그는, 오늘 이 이상으로 대화를 진행하는 것은 포기하고 그저 얌전히, 묵묵히 제 자리만을 지키고 있는 소년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병실 안에는 여전히, 정적만이 맴돌았다. 신타로는 굳은 얼굴로 종이를 넘기던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책을 덮는다. 한 쪽에 그것을 고이 내려놓고 시야 안으로 허옇게 뜬 하루카의 얼굴을 담는다. 알았어요, 들어드릴게요.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으신데요? 왜 제 얼굴 밖에 본 적이 없는데요. 온기 없는 목소리, 기계처럼 그저 흘러나오는 것으로 그치는 목소리. 하루카는 기다렸다는 듯 뜸조차 들이지 않고 내뱉어서. 

  어쩔 수 없어. 있지,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꽃이 보여. 알록달록한 꽃. 타카네는 라일락이었고, 아야노는 마가렛이었고, 그리고 신타로는 처음에 마로니에였는데. 근데, 타카네의 얼굴은 보이다가 사라져 버렸고, 아야노의 얼굴은 미안하지만 아예 보이지 않고, 신타로의 얼굴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보여. 아빠는 말이야, 수국이었어. 타테야마 선생님은……, 버베나였고. 그 밖에도 나는 많은 꽃을 봤어. 장미도 봤고, 백합도 봤고, 살구꽃도 봤고……. 내 눈에는, 언제나 세상이 꽃밭이었어. 그리고 사람이 죽어갈 때는 언제나, 언제나. 

  하루카는 숨을 멈춘다. 입을 다문다. 숨을 삼킨다. 하루카는 말이 없다. 신타로는 검은색 눈을 흘긴다. 저기, 선배. 그래서요. 궁금해진 건지, 아니면 지루하니까.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지.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형태가 없었다. 아무것도 무릎을 적시지 않았다. 시벌개진 눈으로, 그냥 대충 도르륵 도르륵, 눈알을 굴리던 청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언제나 꽃이 붉은색이 되어서, 천천히 바스라지다가, 결국 땅으로 떨어져 썩어버리더라.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신타로의 꽃이 그랬어. 바닥으로 떨어져있던 시선이 늘어진 팔을 타고 오른다. 자신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는 하루카의 눈이 그렇게 휑할 수가 없었다. 신타로는 헛웃음을 친다. 굳어있던 얼굴 위로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르고, 그는 입가에 손을 올려놓고 푸하하, 숨을 터뜨린다. 

  들켰네요. 뚝. 뚝. 뚝. 하루카의 눈물이 어딜 갔나 했더니, 저기 있었구나! 신타로의 손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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