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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코코노세 하루카] 마지막으로.




















  쿠로하는 참고 있던 숨을 뱉어내며 무릎을 꿇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싸늘한 공기가 발끝으로 시작하여 차오르고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무너지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무리의 시선에는 제가 느끼고 있는 공기만큼의 동정도, 무엇도 없는 싸늘함이 담겨 있었다. 코코노세 하루카, 아니. 이름 모를 그 불쌍한 뱀 새끼는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을 깨닫는다. 여태껏 이끌었던 그 모든 계획은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 영혼을 갉아먹으며 더한 일을 일으키게 하고, 마지막까지 그토록 바랐던 "살아가고 싶어." 따위의 소원은 이루어주지도 않고 간단히 외면함은 물론이고 이제는 '너는 끝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운명이라는 것은 참으로 가혹한 것이지, 총알이 떨어진 검은색 권총을 땅에 내팽개치며 붉은 져지를 입은 소년의 모가지를 쥐어뜯으며 했던 말이었다. 어찌도 이렇게 오만할 수가 있는지. 바닥에 널브러져 숨조차도 고르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과 비교하니 참으로 오만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이제는 불쌍해서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니. 허, 하하, 하! 끅끅대며 겨우겨우 내뱉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생을, 평생을!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았어. 평생을 빛도 보지 못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고. 근데, 그래서,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빛을 보고 싶다고 말하잖아. 아아, 신이시어. 제가 그렇게 큰 걸 바랐습니까. 제가 그렇게 큰 희망을 품은 겁니까! 애초에 이럴 거면 태어나게 하지나 말았어야지, 이렇게 내동댕이치듯 버릴 생각이었다면 빛을 보게 하지 마셨어야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끔, 그렇게 나를 만드셨어야지. 누구를 향한 증오인가, 다시금 가슴에서 요동치는 감정에 그는 당장에라도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입으로 모든 것을 게워낼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계속해서 숨 쉬고 싶어? 계속해서 숨 쉬고 싶어! 누군가의 목숨이 되는 것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나도 제대로 숨을 쉬면서, 그렇게. 간신히, 마치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얇은 실처럼 숨을 마시고 뱉어내며 주먹을 아랫입술을 짓씹는다. 이제 끝이야. 몇 번이고 제가 죽였던 소년의 이질감이 느껴질 법한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공간을 울림에 따라 일순간 현기증이 일며 세상이 돈다. 억지로 몸이 뒤집히자 그는 노란색 눈동자를 꾹 눈꺼풀 사이로 집어넣어 숨겼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몸에서, 그리고 공기에서 다소 비릿한 소독약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녀석이 있는 공간으로 다시금 빨려들어 온 거겠지. 몸을 돌려주기 위해서.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나고, 쿠로하는 다시 끝없는 어둠과 함께 저 물 밑에 잠기어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 분간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정말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현기증을 느끼며 살아가겠지. 빛조차도 보지 못하고! 

  꽉 짓누르고 있던 입술 사이로 숨과 함께 신음이 터졌다. 제발, 제발. 제발…. 그간 보였던 당당했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간 거야? 연달아 중얼대며 바닥을 긁어내리는 모습에 소년은 천천히 입술을 벌려 물었다. 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 가장 두려웠어. 이 순간이, 바로 내가 만들고 싶지 않았던 그 순간이었어. 쿠로하의 말에 하루카는 비웃는 기색 하나 없이 그저 그렇구나, 그렇게 답하며 바늘이 잔뜩 연결된 가느다란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그래서, 내가 널 죽일까 봐 두려운 거야?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 몸에서 너를 빼앗고 영원한 어둠 속에 가두어 버릴까 봐…. 그게 두려운 거야? 어째서 이렇게까지 다정한 건지. 닫힌 눈꺼풀 사이로 맺혀 떨어지는 눈물을 숨길 겨를도 없이 쿠로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온통 새하얀 공간, 침대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약품들, 그리고 새하얀 침대 시트 위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부드러운 인상의 소년 한 명과 그 앞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악당.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쿠로하는 온몸을 둥글게 말고 중간중간 흐느낌을 뱉어내며 하루카의 시선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이런 일을 벌였기 때문에 결국 어둠의 저 끝으로 잠기어 사라지는 거라면. 그렇다면,  이 녀석의 몸을 뺏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있을 수 있었나? 나 또한 숨을 쉬며 한 사람이라는 생명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럴 수가 없지! 몸도 무엇도 없는 괴물에게서 태어난 단 한 마리의 뱀 주제에! 아아. 쿠로하는 흐느낌을 멈추고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들어 마른세수를 한다. 얼굴을 쓸어내리고, 콧등을 덮고 있던 그는 별안간 허. 하는 작은 웃음을 터뜨리며 푹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셈이지? 여기서 나를 죽일 셈이야? 나를 저 어둠으로 밀어버리고! 나한테 그렇게 복수한 후, 저 녀석들과 밖으로 나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는 원래부터 여기 살아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갈 셈이지. 그래,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어서 죽여. 죽여! 나를 죽여. 제발 죽이지 마. 두근두근, 뛰고 있는 심장을 타고 몸에 흐르는 피에 가득 찬 단 한마디의 말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그래. 이럴 바에야 차라리 얼른 끝내 버려. 감정과는 다른 말만이 입 밖으로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말 한 번 끊어보려는 기색 없이 하루카는 눈을 끔뻑거리며 썩 여유로운 기색으로 청년의 말을 듣고 있다가 쿠로하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때 즈음 그래, 그렇구나. 그렇게 대답 아닌 대답을 한다. 무어가 그리도 느긋한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청년의 태도에 그는 툭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다. 내가 네 녀석이었다면, 지금 당장 몸을 되찾았음을 축하하며 밖으로 뛰쳐나갔을 거야. 나 같은 놈 따위는 버려버리고……. 죽음을 보채도 결국 저는 그의 페이스대로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렷다. 쿠로하는자리에 주저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할 거야? 시답잖은 여행 계획이라도 물어보듯이 편안히 내뱉은 말에 하루카는 으음~ 하며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보이다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눈길을 돌렸다.

  어딘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하루카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청년은 돌아간 하루카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린다. 찰박찰박, 아무도 밟고 있지 않은 그 웅덩이에서는 어린아이의 보채는 소리가 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지만. 아마도 그 녀석일 테지. 하루카는 느긋이 눈을 깜빡거린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리고 결국.

 "나와 한가지 약속을 해줄 수 있어?"

  라고. 쿠로하를 향해 묻는다. 보는 사람조차 잔잔해질 정도로 하루카의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약속 같은 걸 해봤자 들어줄 수 있을 리가 만무한데. 저는 이제 저 깊은 어둠 속에 갇힐 것이고 그것으로 끝이다. 설마, 저와 함께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따위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의심이 든다. 그런 방법이 있을까? 함께 살아나갈 방법 같은 게…. 쿠로하는 숨을 삼킨다. 간신히 고개만을 끄덕이는 것으로 하루카에게 답하고, 그에게서 나올 말에 온갖 세포를 집중시키며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는다.

  

  하루카는 노란 눈 속에서 빙글빙글 돌고있는 실낱만큼의 희망의 빛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살아간다는 것, 자신의 의지로 숨을 쉬며,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자신의 의지로…….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혼자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삶을 어쩌면 자신보다도 원하고 있는 그 눈빛을 하루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지만…. 그런 감정을 절실히 느꼈던 때가 제게도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더는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웠던가. 이 이상 무엇을 먹어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과,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단 한 번도 눈으로 확인한 적 없는 공간으로 걸어갔다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두려웠던가. 그는 말을 잇기 전, 가볍게 숨을 삼킨다. 이후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자신이 생각한 것을 털어놓기 전 각오를 다지는 가벼운 의미였을 것이다. 

  그는 호선을 그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더는 그저 쓸쓸하게만 느껴지지도, 안타깝게만 느껴지지도 않는 그 얼굴이 청년의 눈 속에 유리조각처럼 강하게 박힌다. 소년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까, 그는 내심 기대하고 있는 듯했으나 곧이어 그 입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에 그는 인상을 미미하게 구기며 고개를 까딱였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줄은 알아? 허! 툭 튀어나온 말에 미미한 떨림과 당황스러움으로부터 흘러나온 헛숨이 섞여 있었다. 허, 허허, 하! 하하……. 쿠로하의 헛웃음만이 공간을 울린다. 

 "너……. 지금 와서 무슨 생각이야?"

 "그저 네게 말한 그대로를 생각하고 있는 거야."

 "웃기지 마! 살아가고 싶다고…. 강한 몸을 가지고 싶다고 빌었던 건 너잖아! 근데 지금 와서……." 

 "나는, 살고 싶어. 하지만 그 만큼 네가 살고 싶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네게 살아갈 기회를 주고 싶어." 

  소년의 눈은 올곧게 빛났다. 하루카는 느긋이 눈을 끔뻑이다 고개를 숙인다. 오직 정적만이 둘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이후로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하루카는 천천히 숨을 내쉰다. 그러니까, 네가. 코코노세 하루카가 되어줘. 정 미안하다면 앞으로는 나쁜 짓같은 건 하지 않으면서,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주면 되는 게 아닐까? 단순히 게임기를 양보하는 것 같은 배려 따위가 아니다. 너는 지금 인생 전부를 내게 맡기고 있는 거야. 입 안으로 상당히 많은 말이 밀려왔으나 쿠로하는 차마 내뱉지 못했다. 하루카는 웃는다. 그래, 이제 시간이 됐어. 너도, 나도 어떻게 할지 선택을 한 모양이니까. 

  물 속에 고개를 처박고 숨을 쉬는 것처럼 몰려오는 갑갑함을 청년은 애써 삼켰다. 시야에 흐릿하게 김이 차며 앞은 보이지 않게 되었고, 기어코 자신에게 몸을 맡긴 그 소년은 팔을 들어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독했던 소독약 냄새가 가시며 여름 특유의 비릿한 향이 코를 찔렀다. 켁, 켁…. 숨과 함께 번뜩 올라오는 미지근한 액체를 뱉어내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청년은 땅에 머리를 처박은 채 연달아 기침을 했다. 

 "하루카!" 

  미친 듯이 입 밖으로 터져나오던 것이 순식간에 막혀 꿀꺽 침과 함께 넘겨진다. ……일순간, 머릿속으로 나누었던 대화와 눈에 담았던 장면들이 필름처럼 마냥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청년은 입가에서 손을 떼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껏 맡아왔던 것과는 또 다른 냄새가 바람을 타고 뺨을 스치며 코끝에서 빙글빙글 저를 간질이다 공기 중으로 흩어져 간다.

  뚝뚝, 저도 모르게 눈을 비집고 떨어지는 것을 미처 닦아낼 새도 없이,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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