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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신타카] 기억중추

 

 

 

 

 

 





[BGM] 랄라스윗 - 파란달이 뜨는 날에












@Spacepapilon



 

 




  

  타카네는 붉은색 소파 위에 기대듯이 앉아 누가 무얼 했다느니, 어느 누가 어딜 갔었다느니, 그런 것들을 떠들며 시답잖은 농담 질이나 하고 있는 재미없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런 건 왜 보고 있는 건지, 신타로는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방 안을 한 번 싹 훑었다. 저 멀리 방 안에 켜두었을 등으로부터 주황색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마는 그것이 암전된 거실을 밝혀주기에는 역부족인 듯 했다. …하여간, 어둠의 자식도 아니고. 짧게, 타카네가 듣지 못할 정도의 크기로 중얼거리며 청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그는 마지막으로 비누거품이 묻어난, 모서리에 분홍색 장미가 그려진 약간 각이 진 네모난 사기 재질의 접시를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물로 박박 닦아낸 후 개수대 옆에 놓인 그릇이 수북이 쌓인 노란색 통 위로 그것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히 꽂아두었다.

  개수대의 바닥을 내려치며 부엌, 거실, 현관, 침실……. 온 집안을 울리던 물소리가 신타로의 손짓 한 번에, 언제 제가 그렇게 큰 소리를 냈었냐는 듯 사그라진다. 꽤 밀린 설거지 감을 한꺼번에 하려니 삭신이 쑤신다, 쑤셔. 빛을 받아 반짝이는 하얀색 사기그릇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그는 별안간 손에 끼고 있던 분홍색 고무장갑을 손가락 끝에서부터 잡아당기어 벗겨낸 뒤 두 개를 겹쳐 개수대에 걸쳐 두었다. 분명 장갑을 꼈을 터인데, 안에 습기가 찼나? 어째서인지 축축한 감촉의 손을 검은색 티셔츠의 옷자락에 쓱쓱 닦아내다 영 시원찮은 느낌에 손을 들어 뒷목을 주물 거린다. 장갑도 슬슬 바꿀 때가 된 듯 했다. 이사 올 때 처음 샀던가? 마치 힘이라도 빠진 것처럼 몸을 축 늘어뜨린 것을 바라보며 그는 곧장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벽에 단단히 고정해두었던 연필꽂이에서 검은색 싸구려 볼펜을 꺼내 윤기가 흐르는 냉장고 겉면에 붙여진 노란색 포스트잇에 깨작깨작 글씨를 적어 넣었다. 고무장갑, 낡았음.

  끈적끈적, 볼펜의 끝으로부터 새어나오다 순식간에 굳어버려 눌러 붙는 것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던지라. 어느 회사의 고무장갑을 사라, 평소처럼 그런 것은 적지 못하고 그는 그만 펜의 뚜껑을 닫고 연필꽂이에 던지듯 쑤셔 넣는다. 저녁도 먹었고, 할 일도 다 끝났고. 어느새 훌쩍 시간이 지나 밖은 어두컴컴하고, 집 안을 울리는 소리라고는 거실에서 나는 차가운 사람들의 목소리와 창문을 두드리는 빗물 소리뿐이다. 충분히 감성에 젖을 만한 상황인데, 어쩌면 여성이 저렇게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는 것도 그 탓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몸이 나른하고, 더는 할 일도 없고. 그러니까……. 심심해진 거야. 아닌 줄을 알면서, 머릿속을 차지하고 아른아른 피어나는 얼굴 하나를 지우기 위해 그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낸 후 발걸음을 옮긴다. 쩍쩍, 바닥을 밟을 때마다 진득하게 붙었다가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살갗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는 투덜거리지 않았다.

  에노모토, 뭐 보냐.

  거실 안은 정말이지, 밖에서 본 것 이상으로 어두웠다. 아마도 하루 종일 어둠의 자식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와 핸드폰, 그리고 수면을 반복했던 자신의 화려한 과거가 아니었다면 굴러다니던 화장품 중 하나를 밟아 부러트렸을 테고, 타카네에게 한바탕 크게 혼이 났을 터였다. 신타로는 천천히 걸어서, 팔을 쭉 뻗어 소파의 등받이를 잡는다. 지나치게 폭신했던 소파는 힘을 가하자 가볍게 눌렸고, 청년은 그 탓에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질 뻔했으나 간신히 몸을 낮췄다. 정말로, 눈 안에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그저 멍하니 티비를 바라보고 있는 타카네의 눈 속엔 까만 어둠만이 가득했다. 표정도 무표정이고, 평소와 같이 매섭지도 않고. 작은 입술을 우물거리지도 않고…. 저도 모르게 숨을 내뱉는다. 푹, 근심 담긴 한숨을 내뱉으며 무릎을 굽혀 바닥에 앉은 채 완전히 소파 등 뒤에 기대어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그는 눈을 느릿하게 끔뻑거리며 그녀의 모습을 새겼다.

  양 옆으로 묶지 않은 검은색 머리서는 티비의 빛이 번쩍일 때마다 윤기가 흘렀다. 눈은 천천히 깜빡거렸고,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지만 아주 드물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본인의 몸보다 한 치수 큰 검은색 니트 카디건을 입고 있었고. 그 속에 입은 하얀색 실크 원피스는 소파 위에 아주 곱게 몸을 누이고 있었다. 허벅지 위로는 카디건에 반쯤 덮인 하얀색의 작은 손이 있을 것이고, 왼손의 약지에는 아직까지도 빼지 못한 은색 반지가 끼워져 있을 테지. 아주, 곱게.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아무리 나아졌다, 좋아졌다, 그리 말한다고 한들 타카네와 신타로, 둘 사이에는 잊지 못한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은 여전히 저희의 팔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잔뜩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티비의 소리가 저희 둘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다. ……. 존재하지 않았다. 신타로는 숨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소파의 삐죽삐죽 올라온 털을 붙잡는 손에 힘이 들었다. 네가 그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해줄게, 너를 혼자 두지 않을게. 그리 말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당신의 공간에 발을 디딘 나는, 당신과 함께 손을 꼭 잡고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 기억의 중심에. 툭툭,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가 거셌다. 밤이 길었고, 영원히 해가 뜨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는 현기증을 붙잡아 억누른 그는 자리서 일어나 비척비척 걸어 타카네 옆에 털썩 주저앉아 손을 뻗었다. 제 손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작은 손을 꼭 마주 잡고, 괜찮아. 괜찮아. 그는 낮은 목소리로 타카네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번쩍번쩍 빛을 쏟아내는 티비를 보며 중얼거린다. 손에 닿아오는 얇고, 반들거리는 차가운 쇠의 감촉 위로 축축하게 물이 묻어나는 것을 보아 닦아내지 못한 것이 있는 듯 했다.









히스님 달성표 보상 :) ~ 

저번에 썼던 서로의 배우자를 잃은 신타카 이야기를 썼습니다…….

제가 이 설정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런가, 생각하는 내내 이것 밖에 떠오르질 않았네요….

달성표! 꾸준히 다 채우셨던데, 정말 축하드려요. 히스님!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