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카게프로

[쿠로신/카게전력60분] 보라색 안개꽃=깨끗한 마음






[BGM] IA X ONE - CITRUS





  난 좀 외로움을 잘 타는 놈이야. 신타로는 손에 들려 있던 보라색 안개꽃의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 바닥에 던져 놓는다. 저 멀리,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있던 청년은 소년의 말에 별안간 히죽,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묻는다. 그래서? 그래서, 라니. 그냥 그런 거야. 나는 외로움을 잘 탄다는 거. 사실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님을 아주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너. 쿠로하의 입 밖으로 무언가가 흘러나오기 전에 신타로는 그가 아무 말도 할 수 없도록, 오직 자신의 말만 들을 수 있도록. 숨을 한 번 들이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별로 다른 녀석들을 가까이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친구라고 해도, 결국 걔들이 채워줄 수 있는 외로움에는 한계가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결국 나는 혼자고……. 아니, 토노가 있으니까 완벽한 혼자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난 혼자야.

  일단,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까, 내 앞에 네가 있더라고. 주절주절, 뭔 놈의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평소에는 죽어라 말을 시키려 들어도 죽은 사람처럼 마냥 입 꾹 다물고 있던 녀석이. 어쩐지 고깝다. 그렇지만 청년은 꿋꿋이, 소년의 말을 끊지 않고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서, 네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없으면 너는 혼자고, 그럼 너는 외로움을 잘 타는 놈이니까…. 끝끝내 죽어버릴 거라는 말이지? 청년의 말에 소년은 이파리의 끝을 잡고 당기던 손을 우뚝 멈추고, 고개를 들어 쿠로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 안으로 보이기 시작한 자신의 모습이 미미하게 떨림을 품고 있었다. 참 솔직하지 못한 새끼. 여유롭게 눈을 끔뻑거리다 별안간 자리서 일어난 쿠로하는 쭉, 기지개를 편다. 그에 따라 아이보리색 카디건은 살짝 그의 허리선을 타고 올라갔다가 쿠로하가 팔을 내리자 원래의 자리를 찾는다.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소년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손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혈관을 타고 흘러 온몸을 씹어 먹는다. 잡고 있던 것이 타오르지 않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고개를 드민 검은 머리의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희고 커다란 손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벌겋게 붉히고 만다. 어느 정도, 본인의 의사를 따른 일이라기보다는 확실히 제 멋대로 타오르기 시작한 게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뜬다. 그에 따라 검은색 눈동자 또한 눈꺼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고 속에 담겨있던 쿠로하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너는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이 단지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어? 벌려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에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가늘게 펼쳐진 시야 안으로 벌어진 입이 보인다. 활활 타오르듯 끝을 모르고 빨갛게, 빨간 네 혓바닥을 보며 나는 멍하니 손끝을 움찔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입술을 벌리어 너를 맞이하고 만다. 글쎄,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겠지. 발밑에서 진흙처럼 철퍽철퍽 소리를 내는 짙은 동정과 분명 자신과 같이 언제까지고 외톨이었던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며 저를 홀로 두지 않을 것이라는 동질감과 희망. 마지막 이파리를 뜯어낸 신타로는 그것을 꽉 쥐어 으깼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처럼 엉킨 혀의 끝으로부터 고여 흘러내리기 시작한 침 한 방울이 고여 으깨버린 안개꽃의 색을 띠고 있었다.

  어찌 너를 두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너를 향한 내 사랑은 그야말로 그토록 사랑하던 꽃말에 대한 모독이었다.  



' > 카게프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신] 아주 해로운 일  (0) 2016.05.17
[하루신세토] 평생 모를 거예요. 내 마음.  (0) 2016.05.17
[신타카] 기억중추  (0) 2016.04.23
[코코노세 하루카] 마지막으로.  (0) 2016.04.14
[하루신] 지는 꽃.  (0) 201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