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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하+코노하]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 어디서 가져온건지 모를 장미꽃을 한 송이 내미는 코노하를 보며 쿠로하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네 녀석 생일이라면 모를까, 그 생일이라는 의미없는 날에 날 껴넣는 짓은 하지 마. 그렇게 퉁명스레 이야기 하며 손사레를 치자 축 눈을 내리뜨고는 어깨를 늘어뜨린다. 니가 무슨 강아지냐고. 무어라 한 마디 하려고 했던 것을 꾸욱 눌러 참으며, 쿠로하는 허어. 한숨을 쉬었다. 이것 참 태평한 새끼일세. 그 날카롭고 소름돋는 눈빛으로 천천히 코노하의 발끝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훑어나가던 그는 곧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뻗어 장미꽃을 홱 낚아챘다. 내 성격도 꽤 많이 죽었지. 그런 소리를 하며 장미꽃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시선이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코노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쿠..
[신타로+하루카] 크리스마스 선물 [BGM] Unbreakable Smile - Tori Kelly 하루카 선배. 코코노세 하루카는 병실 침대에 누워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응, 무슨 일이야. 신타로? 그렇게 물으며 방글 웃자, 저의 앞에 있던 소년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들고 있는 잡지를 휘적거리다 침대 위에 살포시 그것을 내려놓는다. 여름이 지나고, 벌써 가을, 그리고 겨울. 의외로 일찍 끝나겠거니, 했던 저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 어찌어찌 연장전을 벌이고 있었다. 신타로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 붉은 져지의 주머니 안에서 손바닥보다 반 마디 정도 큰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문지른다. 무얼 하는 걸까, 왜 불렀지? 하루카는 눈을 끔뻑거리며 신타로를 바라보았다. 진중히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가령 상..
[쿠로신] CRISPAPPLES 4. 꾹 감긴 눈꺼풀 사이로 은은한 빛이 새어들었다. 아침? 새벽? 알 수 없다. 신타로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려대니 곧 시야 안으로 깜빡거리는 디지털 시계가 들어온다. 새벽 세 시, 이럴 수가. 한 시간 만에 이렇게 눈을 뜨게 되다니. 아, 완전히 망했다. 속으로 탄식하던 신타로는 곧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잘도 잔다. 그렇게 괴롭혀놓고. 저의 옆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쿠로하를 보니 괜스레 속이 근질거리며 열이 찼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고 곤히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꿀꺽, 꿀꺽, 심키기를 반복하던 신타로는 곧 말 대신 숨을 뱉어내며 턱을 괴곤 쿠로하를 바라보았다. 예쁘네. 스윽 머릿속을 스치..
[쿠로신] 묵사 [BGM] Tom Odell - Another Love 죽였어야 했다, 숨을 끊어 놓았어야만 했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숨을 들이마셨다. 오랫동안 마음속 안에 품어두었던 케케묵은 생각들이 질척하게 녹아내린 감정의 응어리 안에서부터 비죽이 얼굴을 내밀었다. 비틀어 올라간 입꼬리가 퍽 재수가 없다. 그는 천천히 팔을 뻗어 청년의 볼을 손으로 쓸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굴레 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눈시울이 붉게, 화하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으므로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뭘 원하는데? 이미 지겨울 정도로 반복한 물음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돌아올 대답을. 자신..
[신쿠로신] 새벽 두 시. [BGM] NELL - 청춘연가 어둠이 깔리고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다. 키사리기 신타로는 조용히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살피자 붉게 깜빡이는 시계가 눈에 들었다. 새벽 두 시인가, 하필이면 이런 애매한 시간에. 눈을 뜬 저를 질책하며 그는 숨을 터뜨려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이대로 누워 다시 잠을 잘까? 그리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만도 같았지만 야속하게도 눈을 감아도 몰려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둠보다 짙은 어둠 뿐으로.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곰곰히 저의 머리를 헤집으며 생각하던 신타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여름 특유의 미지근한 바람이 저를 훅 스친다. 거실을 맴도는 소리라고는 아직까지도 잠에 빠진 또 다른 청년의 숨소리..
[쿠로신] CRISPAPPLES 3. 오다가 넘어지셨어요? 질렸다는 듯 미간을 팍 찌푸린 신타로가 쿠로하를 향해 중지를 들어 보였다. 존나 미친 새끼 아니야, 저거. 씨발. 신타로의 말에 쿠로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가 네 녀석입니까, 멍청하게 몸으로 쇼나 하고 앉아있게. 알았으니까 일단 나가. 저를 내리깔고 쳐다보다 못해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려 웃으며 노골적으로 코웃음 치는 그의 모습에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슬슬 팔을 뻗어 저의 손목을 끌어당기려 하는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정조의 위협을 느꼈다. 신타로는 혀끝에서 빙빙 도는 말을 가만히 삼키고 열린 욕실의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갯짓을 했다. 당황스럽다 못해 진저리가 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지는 짜증을 꾹 눌러 담고 이를 꽉 물었다. 곧 표정을 굳이고 저를 ..
[쿠로신] CRISPAPPLES 2. 그래서, 선생님 냄새를 맡게 해주신 겁니까? 허. 기가 찬 듯 숨을 터뜨린 신타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쿠로하를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신타로가 입술을 비틀며 아, 그것참 감사합니다. 하고 빈정거렸다. 적당히 짜증이 날 터인데 그는 잠시 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오냐, 그으래. 그리 대답하며 걸음을 옮길 뿐이다. 왠일로? 이쯤이면 분명 제게 꿀밤이라도 먹였을 텐데. 고개를 까딱거리며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드는 갖가지 생각들을 떨쳐내며 신타로는 쿠로하의 뒤를 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를 이끌듯이 그저 걷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킁킁, 저의 옷에 고개를 처박고 제 냄새를 맡는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평소 저의 냄새를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냄새도 내지 않는다는 ..
[쿠로신] CRISPAPPLES 1. "키사라기 신타로." 팔락팔락 얇은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했던 교무실 내에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지 3시간 만에 처음으로 저의 이름이 불렸다. 그 목소리에 신타로는 고개를 들어 저의 앞에 앉아있는 남성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곧 제가 본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청년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너무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는 말아. 부끄러우니까, 랜다. 도대체 방금 저의 이름을 부른 것은 무슨 의도였는가, 묘하게 낚인 기분이 들어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 이후로도 서로 오가는 말 없이 그 조용한 정적 속에서 무엇 하나 하는 것도 없이 출석부로 보이는 것을 팔랑팔랑 넘겨대는 큰 손을 구경하던 신타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얼굴로 뻗은 손이 닿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