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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쿠로신] Like I'm Gonna loss you



 

 

 

 

[BGM] Megan Trainor(ft.John Legend) - Like I'm Gonna loss you 










I'm Gonna love you. 

 

 

 





  따뜻한 바람이 뺨을 훑고 지나가며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마치 새하얀 천에 물이 드는 것처럼 미지근한 온기가 퍼져나간다. 신타로는 테라스에 간이침대를 두고 누운 채,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검푸른 액체가 담긴 유리 재질의 둥그런 와인 잔을 손을 뻗어 잡아 들었다. 언젠가 녀석이 놀러왔던 날, 저는 상체가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여 조절해두었던 것을 지금에서야 꺼내 쓸 줄이야. 당시 코웃음을 치며 지껄였던 것이 민망할 정도다. 그는 자세를 좀 더 편하게 조절하며 몸을 기댄 뒤 느긋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이 참 깊구나, 유난스럽게 든 생각이 짙었다. 별 상관 없는 일인 것을 알고 있지마는, 그 녀석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래 가지 않는 감정, 당장이라도 끊길 것처럼 가느다랗게 늘어지는 붉은 인연의 실과도 같은 단어들이 특히나 그랬다. 감성에 푹 젖은 채로 말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말이 나온 김에 솔직히 말해보자면, 그는 인연이라 부르거나, 필연이라고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에 속했다. 믿을만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멋대로 결정짓는 것이 싫어서라고 말은 하지만 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그토록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다예컨대, 필연적으로 만난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못했을 때의 비참함 같은 것들? 그래, 명답이다. 그는 그것이 참 싫었다. 키사라기 신타로는 타인에게서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에 속했다. 생긴 게 어떠한가, 사회적 능력이 없는가. 흔히 사람들이 이성을 볼 때 가장 중요히 여긴다고 하는 그런 조건을 떠나 신타로라는 인간 자체가 그랬다는 말이 옳았다. 선천적인 것이라 붙인 채 현실 도피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쩔까. 사실은 사실이다. 그는 타인에게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언제나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었지. 자신의 뒤에 붙은 꼬리표 덕에 더욱 그랬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난간 너머로 보이는 높은 건물들과, 그로부터 새어나오는 빛들과, 건물 간판에 걸려 연신 깜빡이며 정신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네온사인과 집 바로 아래 뚫려있는 커다란 고속도로에 줄지어 서있는 차들의 앞뒤로 붙어있는 빌어먹을 조명 빛을 모두 한꺼번에 받아들인다. 여기 이렇게 누워있을 때면 정신이 없었다. 쉴 새 없이 눈을 찌르는 빛은 물론이며 미친 듯이 공간을 울리는 차의 경적 소리와 스피커로 틀어놓은 탓에 널리널리 퍼지기 시작한 노랫소리. 나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마치 너와 이별할 것처럼. 90년 대 진부한 로맨스 영화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것이. ……누가 듣는다면 웃기라도 했을까. 신타로는 와인 잔을 툭 튀어나온 입술 위로 가져다 놓은 후 천천히 그것을 들고 있는 손목을 살짝 젖혔다. 아주 당연하게도, 그와 함께 잔으로부터 차가운 액체가 신타로의 입술,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흘러내린다. 

  시큼하게 혀 끝으로 닿아오는가 싶더니 약간의 단맛으로 혀뿌리를 쓸어내리고 목구멍을 향해 흐르는 순간 쓴맛이 톡 터지기 시작하는 것이 결코 좋은 맛은 못 됐다. 아마 이런 와인보다는 얼마 전 제 프로듀서와 마셨던 싸구려 맥주가 좀 더 좋은 맛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대략 두 시간 전 계산대 위에서 이것을 계산하고 있던 자신이 한심해진다. 입술 위로 기울어져 있던 것을 느긋이 세우고, 팔을 뻗어 바로 옆에 놓인 작은 갈색의 원형 테이블 위로 그것을 올려둔 신타로는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가 싶다가도 곧장 손끝을 질질 끌어 테이블 아래로 떨어트리고 천천히 자신의 복부 위로 올린다. 노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내가 반복재생으로 돌려놨었던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날이 서서히 추워지고 있다는 것을 몸이 느끼고 있었음에도 얼굴에 머물며 떠날 기미는 죽어도 보이지 않는 옅은 온기에 그는 몸을 꿈질댄다. 아아, 얇은 담요라도 가지고 나올 것을. 그리 생각하지만 몸은 움직이고 싶지 않아 그저 끄응, 옅게 신음할 뿐이다. 신타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빛들은 그새 어디로 사라지고 노랫소리는 점차 커져 마치, . 영화를 보는 것 같네.

  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는 주인공, 하지만 울리지 않는 전화. 쓸쓸함에 몸부림치지만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고. 슬퍼질 뿐이다. 은연 중에 간이침대에 딱 붙어있던 손을 들고 검지를 뻗어 마치 지휘하듯 그것을 흔들거리기 시작한다. 몰려오는 술기운에 몽롱한 정신, 지금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허나 그는. ……신타로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다시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온갖 빛들이 자신이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음소거를 풀어버린 텔레비전처럼 쩌렁쩌렁, 조화를 잃고 자신에게 몰려드는 소리들이 싫다. 그렇게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기를 몇 분, 그는 옆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기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검은색 핸드폰이 연신 진동을 한다. , , , 단조로우면서도 반복적인 음까지 이 상황에 걸맞는 환상적인 노랫소리로 들리기 시작한 것을 보면 썩 취한 듯싶었다. 무시할까, 핸드폰 액정 위로 하얗게 떠오른 이름 세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스피커의 소리를 줄인다. 큰 소리로 자신을 연신 내려치던 음악 소리는 금세 하나의 배경음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별안간 그는 손을 마저 뻗어 핸드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뭐야, 아직 안 자고 있었네.”

  그토록 그리워했던 목소리에, . 신타로는 작게 탄식하며 천천히 몸을 젖혀 원래대로 자세를 고친 후 작게 헛기침을 하고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 여전히 앞은 흐릿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일순간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좋아한다. 의도치 않은 말 먼저 튀어나올 뻔했던 것을 꾹 삼켜 버리고 입을 열었다.

 “자고 있었는데 네 녀석 때문에 깬 거야.”

 “구라 즐, 네 새끼 목소리가 약에 취한 사람 목소린데.”

  하여간 듣기 좋은 말이라곤 좆도 못하는 놈이다. 아니거든. 중얼거리듯 내뱉으며 왼손으로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리니 미적지근한 것이 손에 남는다. 신타로는 제 빈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주먹을 쥐고 손을 내려 복부 위로 올렸다. 쿠로하는 낄낄대며 그러냐? 툭 한 마디를 던지고는 무얼 하는 중인지 다음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목소리가 듣고 싶었나?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신타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려들지 않는 묘한 정적.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상황임에도 신타로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뿌옇게 안개가 낀 이른 아침, 사람의 작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큰 호수에 갔던 일. 어째서인가, 그런 것을 떠올리게 한다. 갈증이 나서, 그는 다시 손을 뻗어 잔을 잡고 입으로 가져다댄 후 꿀꺽꿀꺽 숨 가쁘게 입 안으로 그것을 흘려보낸다. 목이 타는 듯이 쓰렸지만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쿠로하는 어두운 방, 침대 위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그저 은은하게 빛이 나는 전등 하나를 켜놓은 채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뭐야, 안 자고 있었네. 자고 있을 테지, 그럴 것이야. 그리 생각했건만 예상을 깨고 작은 헛기침을 하며 전화를 받자 조금 당황했다. 수화기 너머로 쉬익 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중간 중간 경적소리와 사람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테라스에 간이침대를 펼쳐놓고 누워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니면 마리화나를 하고 있었거나. 청년은 짧은 정적 이후 숨을 한 번 들이켜더니 중얼거리듯 뱉어내기 시작한다. 어이쿠, 거짓말도 잘 하네. 신타로의 말에 툭 던지듯 대답하고, 그 뒤로 돌아오는 반응에 낄낄대기 시작하니 이윽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적만이 찾아온다.

  참, 지겨울 법도 한 이 정적은 이 녀석과 함께라면 그저 평온했다. 어째서인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몇 번이고 머리를 굴려 생각하며 같잖은 것을 찾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할 뿐이다. 다만, 그런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유난히 빛을 내는 것이 하나 있었다면 그저, 좀 더 이어나가고 싶은 느낌에. 그런 느낌에 휩싸여,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신타로의 다음 말이 나오기까지를 기다릴 뿐이다. 같은 마음이면 참으로 좋을 터인데. 혹 숨 가쁘게 달려 붙잡았다 놓치지 않을까, 그렇게 이 고요함을 깨고 소란스러움으로 자신들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쿠로하는 손을 까딱거린다. 길게 뻗은 검지로 연신 제 무릎 위를 툭툭 건드리던 그는 짧게 침을 삼켰다. 목소리가 듣고 싶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 싶다. 그런 충동이 저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오기 시작한다. 쿠로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봐. 짧게 중얼거리니 응? 하고 물어오는 얼빠진 목소리에 의도치 않게 코웃음을 친다. 왜 웃어. 나지막이 들려오는 반쯤 잠긴 목소리에 그는 입술을 짧게 달싹거리다 느긋이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뭘 하자는 건지. 기나긴 정적 끝에 들리는 말이라는 것에 잔뜩 김이 빠진다. 신타로는 일순간 얼빠진 얼굴로 핸드폰을 뺨에서 떼어내어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허, 숨을 터뜨리며 헛웃음을 짓는다. 곧장 다시 핸드폰에 귀를 딱 붙인 채 뭐냐, 김빠지게. 그리 중얼거리니 건너편에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너 좀 싱겁다.”

 “평소에 네 새끼가 하는 짓이니 반성 좀 해라.”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이크를 입으로 가까이 가져다 댄 뒤 한껏 볼멘소리로 웅얼거리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역시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린다. 난 안 그래. 짧게 답하자 이 이상의 답은 필요 없다는 듯 아니, 넌 그래. 그리 툭 내뱉는 것이. 아오. 씨발, 이런 재수 옴 붙은 새끼.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짜증 가득 담긴 목소리를 느긋이 듣고 있던 그는 별안간 침대 위로 완전히 몸을 누인다. 낄낄대며 눈을 가늘게 뜨고 노랗게 은은한 빛을 내는 전등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청년은 신타로의 볼멘소리에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일찍 좀 자자, 찐따야.”

 “시끄러, 미친놈아. 한밤중에 전화한 이유가 사람 성질이나 박박 긁기 위해서지?”

  담배 당긴다. 여전히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꼭 잡은 채 그는 슬슬 고개를 돌린다. 테이블 위로 널브러진 담배각과 은색 라이터를 손을 뻗어 잡아 무릎 위에 올려둔 신타로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들어 뚜껑을 열었다. , 하고 맑고 짧은 소리가 라이터의 뚜껑이 열림과 함께 공간을 울린다.

 “목소리 듣고 싶었다고 한다면, 구라같냐?”

  깡. 막 담배 앞으로 가져간 라이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낸 소리였다. ……? 신타로는 짧게 되묻는다. 무언가, 너 나 좋아하냐? 라던가. 나도 그랬어, 와도 같은 수많은 답이 머릿속을 빠르게 휘젓고 지나가는 듯 했으나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오직 짤막한 물음 하나뿐이다. 그는 숨을 삼켰다. 빠르게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리를 뒤져가며 찾아낸 단어들을 배열하며 문장을 만들어 낸 그는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

 “끊어, 딴 짓하지 말고 자. 술 작작 마시고, 병신아.”

  뚝.

  ………끊겼다. . 숨을 터뜨려 내쉬고는 뚝 끊겨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자신이 무얼 들었는가, 그것을 다시 곱씹기 시작하자 얼굴 위로 미미하게 돌던 열은 온몸으로 퍼져나가 호흡하는 것을 방해한다. ……자자. 대충 머리를 헤집은 채 물고 있던 담배를 테이블 위로 던져놓고 비척비척 걸어 투명한 유리문을 대충 밀어 열고 안으로 들어간 그는 뜨뜻한 공기가 뺨에 닿아오자 문을 닫고 얼마 안가 앞에 놓여있던 폭신한 침대 위로 엎어져 베개에 뺨을 비볐다. 

  쿵, , . 매트리스와 맞닿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심장을 꽉 움켜잡은 채, 그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닫힌 문 너머의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천천히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나누자. 모두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갖고 있는 걸 활용하자. 그래, 우리에게 내일은 약속되어 있지 않아. …………그렇게,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