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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쿠로켄지] 부디 이 아름다움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당신이 아름답길 바랐습니다.

 

 

 

 

 


 

크고 하얀 손이 천천히 자신의 눈앞으로 내려앉았다. 뜨겁게 끓기 시작한 몸과는 달리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 손은 몸서리를 치고 싶을 정도로 차가웠기 때문에 켄지로는 축 늘어진 손을 들어 쿠로하의 팔목을 잡아 밀어내리라 생각했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몸은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외면한 채 신경을 타고 흐르는 약물에 절어 있었다. 부글부글, 열이 끓었다. 등허리로 식은땀이 흐르며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아아, 아무래도 감기에 걸렸나. 켄지로는 따뜻한 숨을 뱉어내며 컥, ,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괜찮아,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턱이 없었지만, 그것이 내는 목소리는 따뜻했다. 안심되었다고나 할까, 정말로 뭐든지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고 할까.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째서 자신의 몸을 짓누르며 안심시키기 시작한 것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할 새도 없이 켄지로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닫히는 눈꺼풀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던 청년은 웃고 있는 듯했다.

 

 

쿠로하는 숨을 멈춘 채, 마치 세상의 모든 평화를 다 얻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켄지로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째깍째깍, 그나마 정적을 깨고 공간을 울리던 숨소리마저 끊긴 후, 건물 안에서는 생명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연구실을 쓰고 있던 것은 제 앞에 있는 이 중년의 남성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을 처바른 청년은 예외적으로 노랗게 빛을 내는 눈을 느릿하게 끔뻑거리며 켄지로의 얼굴과 옆에 걸린 남색 테두리에 머리를 흩날리는 여성의 그림이 그려진 썩 기분 나쁜 비주얼을 가진 시계를 번갈아 보다 그의 목을 조르고 있던 손을 책상 위에 올린 채 몸을 일으켰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이렇게 편안한 얼굴이니, 살인했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고 오히려 불면증에 걸린 사람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자장가를 들려줌으로써 그를 재우는 데 성공했다는 개운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이는 데 상당히 많은 힘을 소비한 모양이렷다.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서 그는 축 늘어진 시체를 뒤로하고 느긋이 걸어 제 키만큼도 안 되는 작은 냉장고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열어젖힌 후 유리로 되어있는 물통 하나를 꺼내고 문을 닫았다. 곧이어 바로 옆에 있던 짙은 갈색의 나무로 된 찬장 문을 열고 거기서 장미가 그려진 찻잔 하나를 꺼내어 물을 따랐다. 벌컥벌컥 그것을 마시고 나서 쭉 기지개를 한 번 펴고, 컵을 다시 싱크대 안에 넣어둔 채 다시 시체가 아슬아슬하게 누워있는 책상 옆으로 다가간 그는 시체의 옆에 서서 두 팔을 뻗어 손을 시체의 등 뒤로 넣었다. 영혼이 날아가도 육체의 무게가 줄어들지는 않는 모양이지,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며 마치 쓸어내리듯 켄지로의 허벅지 아래로 손을 옮겨 그를 들어 올렸다.

매끈하게 깔린 대리석 위에서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텅 빈 복도 안은 쿠로하가 걷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정적이라는 것은 낄 공간도 없다는 듯 멈추지 않고 울리는 소리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겁을 먹을 법 했다. 허나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다. 좀 더 빠르게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연구소 바로 앞, 뚜껑 위로 도금된 십자가가 박힌 검은색 관 안으로 켄지로를 넣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밤은 썩 길었음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허연 달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에 눈이 부셨다. 그는 좀 더 빠르게 걸었다. 시간과 작업의 난이도를 떠나 슬슬 애간장이 탔다. 일 분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은 광경이 있었다. ………그는 좀 더 빠르게 걸어야 했다.

뚜벅.

뚜벅.

뚜벅.

마침내 커다란 유리문 앞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달은 여전히 밝았다. 둥그렇게 하늘에 뜬 채로 드문드문 구름에 가려져 틈으로 빛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아. 운이 좋았어, 선생. 오늘은 유난히 날이 좋은 거야. 쿠로하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몸으로 문을 밀었다. 혹 켄지로 몸 어딘가에 상처라도 생길까, 조심조심 문을 열어 밖으로 나온 그는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몇 걸음을 걸었는지 미처 다 세지 못하고 그만 뚜껑 열린 검은색 관 앞에 서게 되었다

마치 면사포 같아. 선생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새길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색을 가진 면사포 말이야. 중얼거려도 그는 듣지 못할 터인데. 징그러울 정도로, 몸을 넣으면 그대로 삼켜져 녹아버리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새하얀 꽃이 가득했다. 쿠로하는 몸을 숙여 안고 있던 켄지로를 관의 붉은색 바닥에 살짝 눕히고 발 바로 앞에 놓인 붉은 수국화를 한 손 가득 담은 채 주먹을 쥐었다. 꽃잎이 바스러지며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제 사랑과도 같았다고 한다면, 당신은 뜻을 알 수 있을까. 물크러진 꽃잎을 켄지로의 시체 위로, 마치 괴물의 이빨처럼 그를 집어 삼키기 시작한 백합 꽃 위로 뿌려대던 쿠로하는 마지막으로 손을 털어낸 후 그의 이마에 붉은 입술로 도장을 찍었다.

코를 찌르는 꽃냄새가 징그러웠다. 커다란 제 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