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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쿠로신] 딜.










어쩌면 너도 나도, 다른 녀석들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침대 위에 엎어져 있던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쿠로하는 막 걸친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고개를 돌려 신타로를 바라보았다. 이불로 둘둘 몸을 말고서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로 살짝 붙잡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모습이 어째서인가, 눈에 강하게 박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물을 가치도 없었다. 몸을 섞는 행위에 연장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걸로 안심따위는 할 수 없다. 그래, 저 녀석에게는 아직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남아있는 셈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묻는 쿠로하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관심 없다는 느낌. 울컥하고 차오르는 것이 있을만도 했지만 신타로는 그저 담담하게 말을 이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좀 더 행복해질 수 없을까. 네 녀석은 사람을 그만 죽이고, 나는 네 녀석이랑 그만 싸우고, 걔네들은 걔네들끼리 어떻게든 좀 행복하라고 놔두고. 제가 수틀리는 걸 막기 위함인가, 답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중얼거리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젓는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네 녀석의 같잖은 제안에 그래, 그럽시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생각했어?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쿠로하의 입술 사이로 낮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신타로는 얼굴을 파묻고 있던 베개를 주먹으로 꽉 부여잡은 채 입술을 깨문다. 단지 그런 관계인 셈이다. 각자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몸을 섞고, 끝이 나면 약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총을 쏘고, 총에 맞는 정없는 사이. 무얼 기대했을까 싶어 헛웃음이 난다.
이 좆같은 일을 그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향한 자조적인 웃음. 신타로는 몸을 들썩이며 웃는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단지, 그냥. 변명하듯 내뱉은 말이 묻혔다. 젠장. 욕을 지껄이며 눈알을 굴리다 시린 기운에 눈을 꼭 감은 채 주먹을 쥔다.
참, 약해 빠진 새끼. 이것저것 들먹이며 왜 그럴 수 없냐, 우리가 여태껏 해왔던 행동이 있는데 어째서? 그런 식으로 미친 듯이 발악이라도 한다면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는 총을 들어 망설임없이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 수 있을 터인데. 제 말 한마디에 순순히 입을 다물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럴 마음조차 싹 가셔버린다. 매력이라면 매력이지, 슬 웃으며 미처 단추를 채우지 못한 흰 셔츠의 끝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는 천천히 그것을 벗어 땅에 던져놓았다.
이리 와. 막 훌쩍이기 시작한 녀석의 가느다란 팔목을 잡아당기던 청년은 반대쪽 손을 뻗어 소년의 뺨을 부드럽게 감싼다.
딜. 코끝이 닿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유일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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