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카게프로

[하루신] 아주 해로운 일

 

 











  아, 저 사실 지금 엄청 졸리거든요. 신타로는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쳐들기를 반복하며 중얼거린다. 도대체 어젯밤에는 뭘 했어? 하루카의 물음에 그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빼어내 휘휘 저어 손사래를 쳤다. 선배가 알면 안 되는 짓을 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신타로. 모르는 게 좋아요. 정신건강에 아주 해로운 일을 했거든요.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하루카는 웃는다. 아주 작게, 큰 손으로 작은 주먹을 쥐어 그 측면으로 지그시 입술을 누르며 웃음소리가 교실 안을 맴돌 정도의 크기가 될 수 없도록. 그런 하루카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서, 신타로는 연신 흔들어대던 손을 거두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채 고개를 까딱거리며 샐쭉댄다. 모른다면서 웃는 건 좀 수상한데. 치켜세워진 검은색 눈썹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주 새삼스럽게도.

  하루카는 언제 어디서 샀는지 모를 쭉 일자로 잘 빠진 검은색 철제샤프를 쥔 오른손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도화지 위로 소년의 모습을 그려낸다. 손이 한 번, 두 번, 세 번,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 자리에 새로운 선이 생겼다. 부드러운 곡선, 날카로운 직선,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고 얇은 선,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굵고 검은 선. 세상에 존재하는 여느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각각이었으며 얼마 전 타카네와 먹었던 찌그러진 만두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결국 담긴 그릇의 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의 본질이 흐려지는 건 아니지. 하루카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아니, 사실은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은연중에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렷다. 가지런히 책상 위로 손을 올려둔 채 하루카와 시선을 맞추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도르륵 도르륵 검은색 눈알을 굴려대던 신타로는 예상치도 못한 주제가 제게 던져지자 허, 헛숨을 터트림으로써 당황스러움을 표출했다. 하루카는 침을 삼켜 바짝바짝 마르는 목을 축였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물어올 지도 모르는데. 그럼 무어라고 답해야할지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런 말들이 목을 타고 기어오르다 쓸려 내려간다. 그는 숨을 삼키고 눈을 흘겨 흐릿하게 신타로를 시야에 담았다. 당황스러움이 덕지덕지, 노골적으로 묻어난 하얗고 깨끗한 얼굴이 보인다. 마저 이야기를 이어야 할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끼워 맞추어 다른 주제를 꺼내 놓아야하나. 하루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료를 꺼내들어 책상 위에 나란히 펼쳐놓고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신타로. 나는…….

  나는요?

  하루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신타로의 하얀 얼굴을 선명하게 눈에 담는다. 그러니까, 신타로가 내게 가진 사랑도, 내가 신타로에게 품고 있는 사랑도 말이야. 어디 담겼는가 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 잘못된 건 아니라는 거야. 우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을 한다면. 그렇다면 괜찮지 않을까? 입을 맞대고, 손을 잡고, 끌어안고 하늘 위로 뜬 보름달 아래서 밤새도록 우는 행위들 말이야. 소년은 가만히 하루카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입 밖으로 무언가 새어나오려는 것 같으면서도 그러지 않아서 청년은 아주 약간, 짧은 시간동안 속을 태웠다. 신타로는 물끄러미 하루카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가, 별안간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정말, 곤란하네요. 말했잖아요, 어제도 해서……. 사실 그 전 날도 그렇게 해버려서. 정신건강에 그렇게 해로운 행동들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참이었는데. 몇 센티, 결코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거리가 눈 깜빡할 새에 좁혀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