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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카게프로

여유를 가지고 걷는 사람




 

 




 

  키사라기 모모는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현관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팬이 준 선물이라고 했던가. 검은색 리본이 달린 하얀색 플랫슈즈를 고이 숨겨놓았던 하늘색 박스 안에서 꺼내어 내려놓고 그 안에 들어있던 꾸깃꾸깃 뭉쳐져 있는 종이를 빼내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하얀색 자켓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하늘색 이어폰을 꺼내어 제 귀에 꽂아 넣고 줄 중간에서 달랑달랑 춤을 추며 달려있는 것을 엄지로 꾹 누른다. 달칵달칵,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동에 괜스레 기분이 흔들흔들, 잔 안에서 춤을 추는 음료수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신 안으로 그 작은 발을 쏘옥 집어넣고 두어 번 짤막하게 발을 굴렀다. 신발 안에 꼭 제 발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한껏 들뜬 목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 햇빛과 아스팔트 바닥으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더운 열기에 모모는 숨을 토했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피부에 닿는 열기를 순식간에 잡아채며 달콤한 냄새를 뿌렸다. 여름이구나, 약간의 비린내가 섞여든 것을 보면 이미 다 지기 시작한 꽃으로부터 가져온 냄새임이 틀림없었다. 담벼락의 밖으로 삐죽 몸을 내민 그 소녀는 주위를 한 번 슥 둘러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양쪽으로 쭉 뻗은 길, 앞에, 그리고 양옆으로 자리하고 있는 형형색색의 지붕을 덮고 있는 집들의 담 위로 외출을 참지 못하고 불쑥 튀어나온 나뭇잎들이 둥그렇게 모여 가로수 가득한 숲길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 길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달리고 싶었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눈을 꼭 감고 펄쩍 뛰며 반짝 눈을 뜬다면 시야 안으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런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제 발을 감싸고 있는 신발을 본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다. 그럴 수 있도록 뒤로 돌아 집 안으로 들어가 운동화로 가볍게 갈아 신고 나올 수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오늘 제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기억해야만 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씩 옮겨 나아갈 때마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새어들어 피부에 닿는 빛이 온몸에 무늬를 새긴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뭇잎 끝으로 쌓인 햇빛이 당장 힘없이 꺾여 함께 떨어져 제 콧등 위로 묻어날 것만 같았다. 하늘이 참으로 맑은 날이다. 조그마한 틈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하늘이 끝은 없으리라 느껴질 정도로 깊고 푸르렀다. 하늘을 보며 걷고 있으려니 때때로 무지개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빛이 제 눈꺼풀을 비집고 새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