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리퀘스트

[렛카님/세토신] 밤의 공백







 







[BGM] 라디 - as Always

















 "참, 신타로 씨도! 분명 저녁때 커피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고 말씀 드렸잖슴까." 

  세토 코우스케는 입을 삐죽거리며 커피잔을 들고 있는 키사라기 신타로에게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신타로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한참을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그는 곧 손을 뻗어 신타로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낚아채 옆에 있던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신타로는 평소와는 달리 너무 이르게 돌아온 저의 애인에게 아무 말도 못한 채 한참을 쩔쩔매며 양 손을 흔들거렸다. 아니, 이건 오해야. 범행현장을 발견했슴다, 오해는요! 신타로의 되도 않는 발언에 세토는 푹, 한숨을 쉰다. 그리고 곧,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신타로의 손을 잡은 채 그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범행현장까지야‥‥. 납득치 못하겠다는 의사가 잔뜩 담긴 얼굴, 동시에 큰일 났다‥‥. 하는 위기감이 가득한 얼굴. 그리고 역시 남은 커피가 신경 쓰이는 듯 아직도 흘끔흘끔, 커피잔이 올려진 테이블을 바라보는‥‥. 세토는 좀 더 입술을 내민다. 정말 삐졌슴다. 역시 찔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렷다, 제 말이 끝나자마자 의자가 덜컹 소리를 낼 정도로 몸을 크게 움찔거리며 아하하, 하하, 하하‥ 헛웃음을 흘리며 눈동자를 치켜뜨고 저와 전혀 시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후우, 세토는 숨을 내쉬며 신타로의 손을 잡고 있던 저의 손을 슬그머니 풀어내고, 그대로 들어 올려 그의 뺨을 감싼다. 정말, 안 된다고요. 자꾸 시선 피하시면 뽀뽀해버림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쪽에서 팔 번쩍 들고 환영해야 하는 거 아니냐?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그는 그것을 꾹 삼켜 내려버린다. 안 돼, 안 돼. 이거 진짜 큰일 난다. 아, 아니‥‥. 신타로는 세토의 말에 말끝을 흐리며 끄응, 작게 신음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토와 눈을 맞춘다. 아, 예쁜 눈이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이 툭 튀어 올라 입 밖으로 나올 뻔한 것을 꾸욱 틀어막고, 그는 얌전히 한동안 세토와 눈을 맞췄다. 소년은 잠시 자신과 눈을 맞추더니, 이내 살살 녹아들 것만 같은 목소리로 나긋이 저의 이름을 부른다. 


  소년은 항상 이렇다. 무언가 자신에게 진중히 할 말이 있거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만히 저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다, 자신의 이름을 나긋이 부른다. 그럼 신타로는, 키사라기 신타로는 가만히 세토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그에게 답한다.

 "응, 세토."

 이번에도 그랬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대답하자 세토는 스윽 입꼬리를 올린다. 그럼 그 다음은, 신타로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다음번에 그가 할 말을 예측한다. 답은 이미 다 나와 있지만, 하지만, 그가 무어라고 이야기할지, 그가 무어라고 답할지. 그것을 예측하고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깊은 마음속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낀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기분 좋은 간질거림이. 아, 사랑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기뻐서, 신타로는 생각한다. 그는 물을 것이다. 자꾸 커피를 마시는 데에 이유가 있나요? 

 "자꾸 커피를 마시는 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역시나. 온몸이 근질거린다. 온몸이, 특히 가슴 주위가. 신타로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손을 심장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심장을 꽉 부여잡아서, 그래서.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 뛰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느끼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신타로는 생각한다, 그야 그렇게 하면‥‥‥. 혀끝에 맴도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그는 세토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살풋 웃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손을 뻗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단지,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게 하면, 네가 걱정해주니까. ‥‥‥‥그 말은 담는다. 가만히, 들려주지 않는다. 신타로의 말에 세토는 곧 고개를 까딱거린다.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까운 검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 하지만 악의 없는 표정. 신타로는 뭐, 그런 거지. 그렇게 답하며 세토의 머리칼을 연신 만지작거린다. 검은색의 머리칼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착한 애를 상대로 무얼 하자고. 전혀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의 태도를 질책하며 그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이제 어쩔까, 세토는 그럴 것이다. 그럼, 제가 재워드리겠슴다. 그럼 이제 저는 그의 품에 안겨 따뜻한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며 잠이 드는 것이다. 

  역시 전혀 어른스럽지 못하다. 신타로는 세토에게서 자신이 예측한 말이 어서 나오기를 기다린다. 허나 세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라?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뭐야? 몇 번이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혹시, 하는 두려움에 파묻혀 눈을 뜰 수도 없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큰일 났다. 일말의 불안감이 저의 등허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신타로 씨. 곧, 세토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어어. 신타로는, 가만히 식은땀을 흘리며 세토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곧.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던 손은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소년의 머리 위를 쓸어나가던 자신의 손 또한 미끄러진다. 신타로는 자신의 허리와 허벅지를 둘러싸는 손길에 번뜩 눈을 뜨고 고개를 처들어 세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공주님이라도 안고 있는 양,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저를 안아 들고 가만히 내려다본다. 미미하게 웃음을 띄고 있던 그의 입가는 조용히 포물선을 그린다. 곧 다시 한 번 몸이 붕뜨는 느낌을 받고, 눈을 감았다 뜨니 침대 위의 천장이 보였다. 무, 무슨! 신타로는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세토를 바라보았다. 방금 저를 안아 들다가 곧바로 침대로 던져버린 소년은 서서히 입고 있던 흰색의 후드를 거침없이 벗어 던진다. 

  "자, 잠깐‥‥. 너 무슨 생‥." 

  "잠을 자는 것이 아까운 건." 

  신타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전개에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허나 세토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제가 앉아있는 침대로 다가와 상체를 구부려 작게 소곤거린다.

  "신타로 씨뿐이 아니니까요." 그리 말하는 소년의 어투에는 미미한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신타로는 꿀꺽 침을 삼킨다, 오늘 밤은 글렀구나. 그는 열이 올라 새빨개진 얼굴을 천천히 젖히다 결국 푹신한 이불 위로 몸을 뉘인다. ‥‥망했네. 마지막까지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하고, 간질 거리는 마음만을 꽈악 붙잡은 채로,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