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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퀘스트

[단비담비님/세토카노] 붕괴






※ 2p세토/ 카노멘붕 주의 ※





[BGM] 소유, 매드클라운 - 착해 빠졌어











  멍청하네. 카노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목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았던 그런 목소리. 카노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야 한다. 고개를 들어야만 한다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질책하며 그는 고개를 든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바로 뜨고 자신의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역시나, 고개를 까딱거리며 미친 듯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너 때문에 죽어버렸어. 누나가. 누나가! 저의 앞에 있는 이의 말이 모두 옳다. 그래,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결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저 자신이 지독하게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카노는 눈을 감는다. 뚝, 뚝, 뚝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싫다. 원망스럽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그는, 아아. 아아. 그저 의미 없는 것을 내뱉을 뿐이다. 더는 가면도 쓸 수 없는 거지, 더는. 상처 난 마음은 완전히 갈라져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한다. 카노는 애써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세토를 바라보았다. 맞아, 이건 다 내 탓이야. 하지만 저의 앞에 선 이에게 똑같은 아픔을 전가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또다시 가면을 꺼내 얼굴 위에 덮어쓰며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래, 그걸 지금에서야 알았어? 카노의 물음에 세토는 입술을 꾹 깨물며 카노의 얼굴을 마주하다 픽, 웃음을 흘린다. 이야, 싫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카노의 물음에 세토는 연신 코웃음을 치며 카노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그렇게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네가 카노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슴까. 그리 이야기하며 저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저의 팔을 강하게 쥐어 잡는다. 윽. 저의 팔을 강하게 잡아 조이는 힘에 카노는 인상을 찌푸리며 세토의 팔을 다른 쪽의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거 놔. 강한 통증이 손목으로부터 신경을 통해 차가운 시선처럼 자신의 온몸을 훑고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몽롱함이 밀려드며 세상은 어지럽게 돌기 시작한다. 아아, 젠장. 차마 입 밖으로는 아무것도 내뱉지 못하고, 깨진 가면의 파편은 눈물이 되어 뺨의 윤곽을 따라 흘러내린다. 그는 눈을 감았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눈을 감는다. 제발 아무것도 보지 않도록 해줘. 제발 아무것도 보지 않도록 해줘. 제발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세상을 부정하고 자신의 앞에 놓인 상황을 내친다. 제발. 더는 이런 걸 나한테 보여주지 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저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은 서서히 미끄러졌다. 곧 자신의 뺨을 살살 쓸어내리며 눈물을 닦아주는가 싶더니 모멸감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로 저를 향해 말했다. 

 "부정하고 싶나요?" "이걸 어쩜까, 카노." "누구 마음대로 부정하려 들어." "누나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 

  마치 알몸을 보이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진심을 꺼내 늘여놓은 것이 역겨워 참을 수 없다. 차라리 무너지게 해줘. 간절하게 기도하는 카노를 보며 세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쥐어 카노의 어깨를 잡고 밀쳤다. 어찌 버틸 수 있을까. 천천히 무너져가며 카노는 그저 세토의 얼굴을 바라본다. 네 말이 맞아. 내 탓이야. 그렇게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니 더는 가면을 잡고 얼굴에 들이밀 새도 없이 눈물이 차올라 시야에 안개가 낀다. 마지막까지 저를 바라보고 있는 그 얼굴이 지독히도 아파서, 카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이상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더는‥‥. 어쩔 수 없어, 나는 히어로가 아니야. 나는 약해빠진 사람일 뿐이야. 그런 자기혐오와 질책을 반복하며 닫힌 눈꺼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맑은 눈물이 괴로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차라리 이상 살아있지 않았으면.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고통스럽기 그지없어, 그는 입을 다문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제발 입 좀 다물게 해줘. 누가 씨발 나 좀 죽여줘. 그는 고개를 숙인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것들이 원망스럽고 혐오스러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는 그저 그렇게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무너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