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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신] 작은 기계 "너‥‥, 그거 뭐야?" 신타로는 세토의 손에 들린 작은 기계를 바라보며 몸을 젖혔다. 어쩐지, 붕 뜬 것 같은 느낌에 싱숭생숭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더라니만. 밤이 늦어 슬슬 잠자리에 들까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덮고 있으려니 서랍을 뒤적거리다 무언가를 들고오는 것이. 아, 이거 아무래도 그 각이지. 신타로는 미미하게 무언가를 예측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된 지금, 아. 또 왜 이러냐…. 신타로는 작게 탄식했다. 이마를 짚고 한쪽 눈을 가린 채 물끄러미 세토를 바라보고 있으니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제게 손을 뻗어오는 것이. 능구렁이 같은 느낌일까, 마치 먹잇감을 전혀 사냥할 생각이 없다는 듯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에 오히려 당장 잡아먹히지 않을까 불안함이 솟구쳤다. 설마,..
[카노신] 배신의 이유 [BGM] 이병우 - A Tale of Two Sisters 'Epilogue' "그래, 맞아. 내가 배신자야." 샐쭉 위로 비틀어 올라가는 입꼬리가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 네가. 신타로는 지팡이를 고쳐잡았다. 심장이 아려서 더는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피가 터져 쓰라릴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눈을 감았다. 젠장, 젠장, 젠장! 어째서. 갖가지 물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마치 걸레를 쥐어짜는 것처럼 쿵쿵 뛰어대던 심장에 강한 고통이 몰려오며 꼬이는 기분이 든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해서, 신타로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땅에 주저앉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가라앉았던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뺨을 타고 흐르는 것들이 야속해서 그는 고개를 숙였다. 무엇이 우리를 ..
[세토신] 달걀과 병아리 중 닭이 먼저 래번클로 기숙사를 탑의 가장 꼭대기에 둘 생각을 한 인간은 필시 미친놈이 틀림없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꾹 눌러 애써 진정시키며 계단의 난간을 잡고 헉헉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 신타로는 이제 땅에 고개를 처박을 기세로 숙였다. 회색의 돌 바닥이 바로 눈앞에 놓인 것처럼 가깝게만 보여서 금방 넘어질 듯 몸을 휘청거리다가 난간을 붙잡은 손에 힘을 준 소년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미친 모자 새끼‥‥. 이런 곳에 기숙사가 있으면 나는 좀 빼달라고! 거친 숨이 섞인 목소리로 쥐어짜듯이 뱉어낸 목소리가 곧바로 돌 바닥에 부딪혀 흩어진다. 젠장, 젠장, 젠장, 벌써 이 높디높은 탑에 발을 디디게 된 지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슬슬 익숙해질 만도 한데,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욕을 씹어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
[탕님/쿠로마리] 애정의 되풀이 불쌍한 나에게도 단 한 번,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가 앉아있는 곳은 붉은 방 같았다. 흡사, 붉은 방. 물감 따위는 아니고,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고인 피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펴 바른 듯한 느낌이 가득하게 피로 잔뜩 무언가 그려진 그런 방.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자신의 탓으로 그 모든 것을 돌려가며 생각해봐도 남는 것은 자책뿐이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분홍색의 두려움이 잔뜩 서린 눈물 걸린 둥그런 눈을 천천히 굴리기 시작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내뱉은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지자 그는 전혀 무미건조한 노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쿠로신] 헌팅 "저기, 저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시간 좀 있어요?"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턱을 괸 채 조그마한 분홍색 입술을 달싹거리며 물어오는 것이 퍽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쩐 일로 날씨가 좋다 했더니만, 다 이런 걸 위해서였나. 18년 모태솔로 인생에 새어들기 시작한 불빛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이 모든 것을 축복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신타로는 작게 숨을 삼켰다. 자, 진정하자. 키사라기 신타로. 여기서 당황해서 허둥거리면 오래간만에 찾아온 기회는 물거품이 되리라. 지난 몇 년간 쓰라린 아픔과 기억으로 꾸준히 배워왔던 모든 것을 여기서 쏟아부어야만 한다. 흥미 없는 사람처럼 부드러운 눈웃음을 짓는 여성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루신] 괜찮아요, 선배. 뭐가 괜찮아? [BGM] Hi-Rez - 3 Ft Tall (Prod. Rekstarr) 하루카는 제 앞에서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던 신타로와 잠시 눈을 맞추다가 그대로 시선을 거둬들여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주삿바늘이 끼워져있던 자리가 흉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런 치료를 받게 되었더라? 지그시 눈을 감고 어떻게든 떠올려보려 안간힘을 써봐도 그럴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지. 저기, 신타로. 이게 우리 몇 번째 루프더라? 하루카는 최대한 웃음을 띠운 채 신타로에게 묻는다. 신타로는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다가 별안간 빙그레 웃어 보이며 글쎄요, 선배. 저 세는 거 포기했어요. 몇 번째인지 저한테 물어보셔도 전 이제 몰라요. 신타로의 대답에 하루카는 허. 작게 숨을 내뱉는다. 어라, 정말? 그거 이상하네. ..
[신아야] 마지막 파일입니다. [BGM] Abstract (ft. RoZe) - Radio 거슬려. 신타로는 방 안을 울리기 시작한 소리에 숨을 토했다. 있지, 신타로. 신타로는 나중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뭐가 되고 싶으냐니.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보는데? 하지만 신타로가 되고 싶은 게 있다면 궁금해져서. 물어봐도 괜찮아? 지긋지긋하도록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소년은 눈을 감는다. 도대체 언젯적 일이더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지만 떠오르는 건 없다. 그는 느긋이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녀가 불었던 풍선, 언젠가 그녀가 선물했던 작은 반지,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제게 들이대기 시작한 작은 녹음기!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앞에서 그녀의 모습으로, 그녀의 형체로, 붉은 머플러를 흔들거리며 제게 손을 펼쳐 보인다..
[세토신] 세토는 외형묘사를 포기했다 [BGM] 브라더수 - 다른 별 아, 존나 살기 싫다. 침대 위에서 베개에 얼굴을 처박은 신타로가 웅얼거리자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세토는 고개를 돌려 신타로를 바라보았다. 신타로 씨, 정말. 안 됨다. 살기 싫다뇨! 그런 말은 나쁜 검다. 마치 잘못된 행동을 한 애를 살살 달래듯이 중얼거리는 것이 무지하게 단 초콜릿을 입안 가득 처넣고 있는 것처럼 질릴 정도로 다정하기 짝이 없어서. 베개에 고개를 파묻은 채 살짝 얼굴을 틀어 세토를 바라보고 있으니 부드럽게 휘어진 갈색의 눈동자가 시야에 든다. 누가 보아도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것에 괜스레 부끄러워져서 너, 애 달래듯 굴지 마. 이래 봬도 내가 네 녀석보다는 어른이라고. 다소 퉁명스럽게 툴툴거리기 시작하니 세토는 큰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