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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신] 딜. 어쩌면 너도 나도, 다른 녀석들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침대 위에 엎어져 있던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꽤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쿠로하는 막 걸친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고개를 돌려 신타로를 바라보았다. 이불로 둘둘 몸을 말고서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로 살짝 붙잡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모습이 어째서인가, 눈에 강하게 박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물을 가치도 없었다. 몸을 섞는 행위에 연장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걸로 안심따위는 할 수 없다. 그래, 저 녀석에게는 아직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남아있는 셈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묻는 쿠로하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관심 없다는 느낌. 울컥하고 차오르는 것이 있을만..
[하루타카] 넌 집에 안 가고 싶어? 날이 참 맑았다. 점심을 먹은 후라 그런가, 잠은 점점 오기 시작하고. 아니. 사실 점점 오기 시작했다는 말보다 반쯤 잠에 절어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리라. 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헤드폰에서는 여전히 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쿵짝쿵짝, 이런 정신 사나운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도 잠에 반쯤 절어있을 수 있다는 건 썩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까? 어디 잠을 가장 잘 잘 수 있는 사람에게 상 주는 대회 같은 게 있다면, 그런 직업이 있다면 평생 놀고 먹으며 돈까지 벌 수 있지 않을까 쓸데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그런 생각이 머리를 한 번 휘젓고 바람에 실려 창 밖으로 사라져간다. 그런 자신과는 다르게 또 다른 소년, 코코노세 하루카는 제 옆에 있는 책상에 앉아 끊임없는 창작을 통해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
[쿠로신] 착각이 아닙니다 깡, 신타로가 팔을 한 번 휘적거림과 함께 그가 들고 있던 캔은 곧장 날아가 하얀색 벽과 부딪힌 후 벽 위에 짙은 커피자국을 두 방울 정도 남긴 뒤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새끼 또 왜 승질이람. 하얀색 가운을 입고 한쪽 팔에 차트를 낀 채 우두커니 신타로를 바라보고 있던 쿠로하는 짧게 혀를 차며 들고 있던 커피를 마저 마신 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푸른색 쓰레기통 안으로 그것을 던져 넣었다. 깡, 깡! 아무리 한적한 시간이라고 한들 의사라는 것들이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다 마신 커피캔을 대충 쳐박는 것도 모자라 욕짓거리나 뱉고 있으니 이건 뭐, 의사로서의 위엄따위는 개한테나 던져주고 있다. 타카네가 자리에 있었다면 그리 말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분명 말 조심 정도야 했겠지마는, 알 바인가. ..
[쿠로신] 20160310 쨍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신타로는 제 뒷통수를 강하게 갈기고 공기중으로 흩어져가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처들었다. 이 씨발 성깔 더러운 새끼! 보나마나 무어나 수틀리는 게 생겨 현관에 발을 딛자마자 신발장 위에 놓여있던 하얀색 꽃병을 떨어트려 깨뜨렸을 것이다. 그건 언젠가 쿠로하가 신타로에게 선물했던 꽃이었는데, 언제였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퍽 오래된 것이었다. 다섯개의 노랗고 얇은 꽃잎이 축 늘어진 것이 아름다워서 아, 이 꽃은 오랫동안 키우고 싶다. 그리 생각했었던 것이 떠오른다. 쿵, 쿵, 쿵! 현관에서부터 시작된 소리는 그칠 줄을 모르고 연장선을 그리며 저가 누워있는 방을 향해 다가온다. 몸을 감싸고 있는 이불 속 온기는 사라질줄 모르고 발끝부터 머리 꼭대기까..
카게 전력 60분 [신아야] 어느 휴일 창문을 통해 저를 비추는 햇빛이 꼴에 봄이라고 반짝반짝 법석을 떨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귀찮다고 해야 할까, 싫다고 해야 할까,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신타로는 제 옆에 쭈그려 앉아 책상에 손을 얹고 반쯤 목도리로 얼굴을 가려놓은 채 둥그런 갈색 눈망울을 보기 좋게 치켜뜬 소녀의 얼굴을 도르륵 눈동자를 굴려 한 번 바라본 뒤 작게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이 녀석은 뭐가 좋아서 이렇게까지 옆에 붙어있는 거람. 친하게 지내준다는데 무어가 그리 불만인지, 좋아라, 팔을 벌려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지는 못할망정 손을 휘적거리며 약한 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으로 아야노를 밀어내는 저의 꼬락서니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거나, 주관적으로 보거나 일단 추했다...
[쿠로켄지] 부디 이 아름다움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당신이 아름답길 바랐습니다. 크고 하얀 손이 천천히 자신의 눈앞으로 내려앉았다. 뜨겁게 끓기 시작한 몸과는 달리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 손은 몸서리를 치고 싶을 정도로 차가웠기 때문에 켄지로는 축 늘어진 손을 들어 쿠로하의 팔목을 잡아 밀어내리라 생각했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몸은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외면한 채 신경을 타고 흐르는 약물에 절어 있었다. 부글부글, 열이 끓었다. 등허리로 식은땀이 흐르며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아아, 아무래도 감기에 걸렸나. 켄지로는 따뜻한 숨을 뱉어내며 컥, 컥,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괜찮아,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턱이 없었지만, 그것이 내는 목소리는 따뜻했다. 안심되었다고나 할까, 정말..
해리포터 그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자신의 형제인 시리우스 블랙의 편지에 역겹다느니, 좋아하지 않는다느니, 얼굴을 보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너무한 말들을 담담하게 적어내고 자신의 부엉이에게 그것을 물려줌으로써 위대한 블랙 가 두 아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끝내려던 참이었다. 그는 부엉이가 창문 밖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의 꼬리털조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즈음 지평선 너머로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불그스름한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을 마치 제 땅인 듯 장악하고 있던 퍼렇다 못해 다 타고 남은 재처럼 시커먼 하늘을 밀어내고 마치 물 위에 잉크를 떨어트리듯 순식간에 자신의 색으로 하늘을 덮어내는 햇빛은 참, 아름다웠다. 레귤러스는 괴이하게도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쿠로신] Like I'm Gonna loss you [BGM] Megan Trainor(ft.John Legend) - Like I'm Gonna loss you I'm Gonna love you. 따뜻한 바람이 뺨을 훑고 지나가며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마치 새하얀 천에 물이 드는 것처럼 미지근한 온기가 퍼져나간다. 신타로는 테라스에 간이침대를 두고 누운 채,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검푸른 액체가 담긴 유리 재질의 둥그런 와인 잔을 손을 뻗어 잡아 들었다. 언젠가 녀석이 놀러왔던 날, 저는 상체가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여 조절해두었던 것을 지금에서야 꺼내 쓸 줄이야. 당시 코웃음을 치며 지껄였던 것이 민망할 정도다. 그는 자세를 좀 더 편하게 조절하며 몸을 기댄 뒤 느긋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